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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와대(黃瓦臺)로 개명하자는 주장


     1961년 5.16쿠데타가 일어난 후에도 윤보선 대통령은 얼마간 청와대에 거주하였습니다. 윤대통령은 그러나 1962년 3월 정치정화법이 발표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해 1년 7개월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났습니다.

    19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한 朴正熙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생활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건물도 많이 바꾸었습니다. 특히 협소했던 구관이 크게 보수·증축되었습니다. 1968년 3월부터 9월까지의 8개월 동안 지하실이 증축되었고 1969년 6월부터 8월 사이에는 집무실, 가족공관 및 소연회실 등이 개수·확장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부분적 내부개수를 실시하여 대접견실과 대식당을 보수하였으나 2층의 서재와 거실만은 부분적으로 수리하여 별 변동없이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73년 8월에는 경호원을 위한 숙소와 기물보관창고를 별도의 2층 건물로 신축하였습니다.

    1977년 12월 朴正熙 대통령은 일본식인 상춘실(賞春室)을 철거하고 22평 규모의 천연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양식 목조 건물인 상춘재(賞春齋)를 착공해 78년 3월에 완공하였습니다. 1978년 12월에는 각종 의전행사 및 기자회견장으로 영빈관이 신축되기도 하였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재임 직후 또다시 이름을 고치라는 투서가 날아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청와대의 청(靑)보다는 황(黃)이 존귀함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黃瓦臺"라고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옛날 황제는 황색옷을 입었고 왕궁은 황기와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일축해 버렸습니다. 경무대를 청와대로 고친 것도 마땅하지 않은데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청와대의 이름을 또 다시 바꾸어야 하는가 라는 논리였습니다. 대통령 부인이었던 陸英修 여사도 개명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청와대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가를 놓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3공화국때 한국일보의 청와대 출입기자를 지냈던 鄭光謨씨에 따르면 陸여사는 청와대를 블루하우스라고 하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陸여사는 대외용 봉투나 타이프 용지에 『Chong Wa Dae』라고 쓰라고 했는데 고유명사인 청와대를 블루하우스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까지 영어화해야 하느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鄭光謨씨가 쓴책 「청와대」 57쪽을 보면 의전비서실에서는 陸여사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블루하우스가 이미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곤욕을 치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陸여사는 陸여사 나름대로 『Chong Wa Dae』라고 쓰고 의전은 의전대로 『Blue House』라고 써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陸여사는 블루하우스라는 영어 명칭을 쓰는 비서관들을 자주 꾸짖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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