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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盧大統領)당시 건물 신.개축 많아


     프레스센터인 춘추관, 대통령의 살림집인 관저, 그리고 집무공간인 본관은 盧泰愚 대통령 시절 새로 지은 것입니다.

    구청와대 본관은 장소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내방객을 맞기에 아주 불편했습니다. 1989년 2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는 수행원이 대기할 장소도 마땅치 않아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에 청와대 신축에 대한 곱지못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신축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통령 살림집인 관저의 경우 일제 때인 1939년 미나미 총독이 1939년 들어온 이래 본관에 살림집이 있었는데 1990년 10월25일 새 관저가 완성됨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과 살림집이 분리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1989년 8월 28일 착공됐으며 대지면적 1천2백60평, 본채 2백44평, 별채 1백58평 기타 부속시설을 포함한 연건평 8백12평의 1층 건물로 건설되었습니다.

    1990년 2월 20일 관저 신축공사장 바로 뒤에 있는 바위에서 『天下第一福祉』라는 표석이 발견됐습니다. 이 표석은 암벽 전면이 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태로 방치돼 있었습니다. 화강암 암벽을 깎아 만든 이 표석은 가로 2m 50cm, 세로1m 20cm 크기에 글씨 크기는 세로 가로 50cm씩이었으며 획의 평균길이는 9cm입니다. 글씨체는 해서체였고 낙관자리에는 연릉 오거(延陵 吳据)라는 글을 쓴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이름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우리나라 금석학의 태두라는 任昌淳옹을 초청해 자문을 구했는데 任옹이 내린 결론은 글이 약 3백∼4백년 전인 조선조 중기 것으로 보이며 글씨체는 중국 청대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저가 완성되기 한달여 전인 9월 29일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이 완공되었습니다. 1989년 5월10일 착공된 춘추관은 삼청동쪽 청와대 경내 입구에 세워졌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1천 28평의 건물입니다. 대통령이 집무를 하는 청와대 본관은 1989년 7월 22일 착공된 뒤 만 2년 1개월만에 완공되었습니다. 옛 기맥을 되살린다는 뜻에서 북악산정(山頂), 경복궁, 광화문, 관악산을 잇는 축선에 세워진 신축 본관은 지하1층, 지상2층의 대형 청기와 집으로 건물의 연면적은 1층 1천2백2평, 2층 4백58평, 지하층 4백96평등 총 2천5백64평입니다. 이 건물을 만드는데 든 청기와 양은 총 16만장으로 1백년이 지나도 끄떡없는 강도를 지닌 것입니다. 1층에는 중앙홀, 대회의실, 대식당, 영부인 접견실, 2층에는 집무실, 접견실, 회의실, 소식당이 마련돼 있고 , 지하층에는 기관실, 전기실, 공조실이 설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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