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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무대,국민의 원성을 듣기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이승만 대통령 내외는 이화장에서 일제 총독 관저였던 경무대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하지장군이 생활할 때부터 경무대란 이름을 되찾았던 이곳은 이승만 대통령이 옮겨오면서 경무대란 이름을 일반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인식시켰습니다. 이대통령은 경무대란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고 합니다. 경무대란 이름 대신에 "KMD"란 영문 이니셜도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가 심해감에 따라 경무대라는 이름은 점점 국민들의 원성을 사는 원부의 인상을 풍기게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 2층은 생활공간으로 1층은 집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우중충한 경무대를 개조하자는 의견을 많이 올렸으나 이를 거절하고 건물의 치장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1960년 8월 윤보선씨가 2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경무대라는 이름이 국민의 원성을 샀던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서는 경무대라는 이름을 존속시켜야 하느냐 아니면 이름을 바꿔야 하느냐 그리고 바꾼다면 어떤 이름이 좋은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윤대통령이 개명에 동의하자 이름을 물색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수개월간의 물색작업 끝에 경무대로 불려간 사람이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었던 金永上씨였습니다. 개명작업에 관한 과정은 鄭光謨씨가 1967년에 쓴 「청와대」란 책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정씨가 쓴 글에 따르면 김씨는 경무대라는 이름이 일제 총독이나 이승만 박사가 지은 것이 아님을 들어 개명에 반대했으나 윤보선 대통령의 간청에 못이겨 두가지 이름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화령대(和寧臺)였고 또 하나가 청와대였습니다. 화령이라는 이름이 제시된 것은 조선창건 당시 태조가 「조선」과 「화령」이라는 이름을 명나라에 제시한 뒤 두가지 중 좋은 것을 골라달라고 한데서 유래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또 하나의 이름인 청와대는 관저의 기와가 평화를 상징하는 푸른 빛깔이라는 데 착안한 것이었습니다.

    학창시절 고고학을 전공한 윤보선씨는 청기와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재인 만큼 고유한 전통을 지닌 집이라는 뜻에서 「청와대」가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이 이름이 미국의 「화이트 하우스」와 대조적인 「블루 하우스」란 뜻에서도 윤보선씨의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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