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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의 관계


박 대통령과의 관계


    박 대통령과 나 사이는 평범한 보통 사이였다.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워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3선 개헌 때도 그랬고, 1975년 내가 유신 헌법 개정 투쟁을 할 때도 정치적으로 대립했지 개인적인 호오(好惡)의 감정 같은 것은 없었다.내가 박 대통령의 정치 행태(行態)를 공격하고 독재자라든가 하는 말은 했지만 인신 공격은 안했다. 박 대통령 역시 나를 정치적 반대자로 비판했지 비방같은 건 안 했다. 그랬기 때문에 청와대 회담도 했고 회담에선 격의없이 마음을 열었다.

    그랬는데 회담이 있었던 날로부터 3-4개월 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 달라질 이유가 없었는데 달라졌다. 그러니까 나는 이유를 만들지 않았는데 박 대통령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원래 권력의 주변에는 그들과는 이익을 같이 안하는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는 장막이 있다. 그들은 대통령의 그늘에서 누리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에 대한 위협은 그들에게는 공적(公敵) 1호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회담한 뒤 내가 공적 1호가 되었다.

    그 이유는 박 대통령이 제공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나와 회담하면서 헌법을 고친 뒤에 선거하면 김 총재가 당선되겠지요. 공화당에서 김 총재를 이길 만한 사람이 없어요. 김 총재도 대통령이 되어 보면 알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음에 다시 하기로 하고 비밀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나한테는 비밀로 당부해 놓고 대통령은 측근에게 얘기를 했다. 이렇게 되니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박 대통령 측근들의 공적 1호가 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싫어하게 할 어떤 자료들을 만들어 제공했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박 대통령이 나를 싫어할 온갖 것을 만들었고, 그 결과 박 대통령은 내가 야당 총재가 되는 것까지도 거부했다.대화의 통로가 없을 때는 누군가가 만들려고만 하면 순식간에 관계를 단절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당을 운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등 일을 하게 되면 의견 차이 같은 것은 있기 마련이다. 민자당의 경우에는 합당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서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정말이지 바람 잘 날 없는 2년 반이었다. 이 기간 주례 회동이 오해 같은 것이 생겨날 여지를 없애고 문제를 풀어 가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주례 회동은 중요 문제나 심각한 토의만을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국정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가 한가로운 화제도 있었다. 집안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상호 이해를 넓히는 데 마음을 썼다. 군이라든가 대통령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노 대통령이 배우고 느낀 일 같은 것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때로는 대통령과 내가 여와 야로 갈려 가파르게 대결했던 때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파안대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