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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회동의 정례화 의미


주례 회동의 정례화 의미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가장 나쁜 상태가 지나고 보면 좋은 역할을 한 경우가 있다. 각서 파동도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각서 파동은 심각한 위기였다. 나는 정말 화가 났고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각서 파동이 전화 위복이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은 주례회동에 관한 것이다. 노 대통령과 내가 매주 한 차례 만나는 주례 회동은 각서 파동을 수습하면서 마련한 장치다. 서로 만나지 않으니까 작은 문제에도 오해가 생기고 틈이 넓어진다. 자주 만나는 것이 문제를 없앤다는 취지에서 주례 회동을 마련했다.

    주례 회동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민자당 2년 반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누군가가 민자당이 겪은 시련을 발언 파동이라고 했다. 박철언 발언 파동에서 시작해 최영철 제주 발언까지 파동은 발언에서 시작해 발언에서 끝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발언들이 모두 내각제 추진과 관계가 있다. 내각제 개헌은 민정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래의 정치 설계였다고 할 수 있다. 온갖 지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나는 자주 곤경에 빠졌다. 국회는 문을 닫아걸고 있고 정치 불신은 깊어가고 세대 교체니 뭐니 해서 몰아대는 그런 분위기가 되어 있으니 온갖 일이 일어났다. 당에 기강도 안 서고 사방에서 말을 만들고 했다. 개혁을 하든 뭘 하든 일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걸 보여 주어야 합당의 의미가 살아나는데, 내각제다 아니다 하니까 통합의 명분과 목표가 희미해져 버렸다.

    1991년 5-6월은 최악이 아니었던가 싶다. 소위 뇌물 외유와 수서 사건이 정치의 도덕성을 형편없이 떨어뜨려 놓았다. 경제 사회 상황도 아주 나빴다. 통합의 명분은 빛이 바랜 지 오래고, 그런데도 이런 말 저런 말 쓸데없는 잡음은 여전했다.이 상태는 사실은 떠들썩했다는 박철언 발언 파동이나 각서 파동보다 오히려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삐걱거리는 소리 같은 것 없이 고비를 넘어섰다.만약 주례 회동이 정례화되어 있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내가 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유신 정권하에서 본 권력의 속성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에서는 사람을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구분해 다스린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주 격렬한 반대자라도 그가 당당한 반대자라면 대체로 법을 정당하게 적용하거나 때로는 관대한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저건 나쁜 사람이라고 점찍게 되면 보복이라고 할 가혹한 처리도 더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