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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문서에 서명하게 된 경위


내각제 문서에 서명하게 된 경위


    내각제가 두번째로 제기된 것이 5월 전당대회 준비를 하던 때다. 민정계 사람들은 내각제에 관한 합의를 기어이 문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안 되면 민정계를 설득할 수가 없다. 총재, 대표최고위원, 최고위원으로 된 지도 체제에 대해 전당대회에서 이의(異議)를 제기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총재의 임기 2년도 대통령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하자, 대회 준비 실무회의에서 민정계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었다.한마디로 내각제 개헌에 관한 합의를 문서화하지 않는 한 다른 합의도 백지화하겠다는 얘기였다. 이 문제로 1주일 넘게 진전이 안 되고 있었다.

    "문서화한다 해서 개헌이 되고 문서화하지 않는다 해서 개헌 안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문서화할 성질도 아니고 문서화하는 것이 도리어 개헌을 할 수 없게 할 가능성이 더 많다."

    이렇게 말했지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물러섰다. 소용없는 일인 줄 알지만 모두들 원한다면 그렇게 하자. 그러나 이것이 알려지면 개헌도 안 되고 합당 정신도 손상된다. 이것을 약속하자. 이런 다짐을 받고 문서에 서명했다.민정계와 공화계는 나와 민주계도 개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내내 의심했다. 나는 내각제 개헌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반대하지 않았다. 모든 문제가 다 그렇지만 헌법 문제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합당 교섭을 하던 때 정말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것인가를 묻기에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각제는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안 된다. 이 문제는 김대중 총재와 상의할 문제고 김대중 총재와 담판할 사람도 나밖에 없지 않은가. 합당하던 때나 합당 후나 개헌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구상이 그랬다. 민정계 역시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과 교섭하고 담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평민당에 접근하는 방법에서 저마다 달랐다.

    개헌 추진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것은 박철언 씨의 추진 방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합당 한 달 남짓 지난 단계에서 박 의원은 민자당의 1992년 지도 체제에 약속 같은 건 없다. 김영삼 씨도 하기 나름이지 정해진 것 아니다. 그러면서 제2의 정계 개편론까지 내비쳤다.이것은 김대중 총재와 평민당에 보내는 신호다. 평민당이 뭐라고 받아들였겠는가. 기다리면 김영삼 씨와 민주계는 밀려나겠구나. 그 때까지 기다리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두번째 잘못은 개헌 합의가 문서화된 것을 내비친 것이다.창당대회 직전 문서화 얘기가 났을 때 이건 안된다고 했다. 지금 김대중 총재와 평민당이 합당에 대한 정치 공세를 하고 있고, 개헌 음모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때 우리의 개헌 추진 얘기가 나가면 평민당은 개헌에서 더 멀리 도망간다. 개헌 합의 더욱이 문서화가 알려지면 개헌도 안 되고 합당에 대한 정치 공세만 더 세차게 펴게 할 뿐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들은 내 당부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