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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장관의 탈선과 합당정신 훼손


박철언 장관의 탈선과 합당정신 훼손


    내가 11일간의 소련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국내 상황은 좋지 않았다. 언론들은 합당을 이루어지게 한 기본 합의는 내각제 개헌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당내 개헌론자들은 너무 서두르고 있었고, 이것은 합당의 정치적 의미를 손상했다. 합당을 정치적 야합으로 규정하는 야당의 공세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박철언 장관은 '평민당과 합당했다면 훨씬 쉬웠을텐데 잘못되었다', '제2의 정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단계의 제2 정계 개편론을 내놓은 것은 평민당에다 어떤 신호를 보내달라는 뜻이 있었을 지는 몰라도 그것은 도리어 상황을 더 나쁘게 했다.

    두 곳에서 진행 중이던 4.3 보궐선거에서도 정부는 서툰 짓만 했다. 대구 서구에서는 재출마한 정호용 씨를 사퇴시키는 일에 정보 기관이 나섰다. 신문들은 미행, 협박, 도청 등 정보 공작 정치로 정호용 씨와 그 주변을 압박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선거 결과는 민자당의 패배였다. 진천 을(乙) 선거에서는 민자당 후보가 낙선했고, 대구 서구에서는 가까스로 당선했지만 정호용 씨를 사퇴시켜 얻어낸 승리여서 사실은 이곳 역시 패배했다.합당으로 원내 안정세력이 확보되자 정부 여당은 오만해져 정보 공작 정치를 공공연히 자행하고 개혁은 안하고 권력구조 개편이니 제2의 정계 개편이니 권력 놀음이나 한다는 비난을 불러들였다.

    합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급속도로 떨어졌다. 합당하던 때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여소야대 때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과거의 방식이 되살아나고 민정계는 다수를 얻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이런저런 대책을 강구할 것이고, 그래서 상당 기간 삐걱거리는 소리는 예상하던 일이다. 그러나 너무 빨리 또 엄청나게 빗나간 방향으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상당한 충격을 가하지 않고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작 정치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정치 발전과 민주화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혁은 안 하고 권력투쟁이나 하고 정보 공작정치는 여전하다는 세평은 합당에 대한 평가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구도로는 안된다고 4월 6일 문제 제기를 했다.

    "심지어 여당 최고위원인 나에게도 공작 정치를 하려고 덤벼든다. 공작 정치하고 망하지 않은 정권이 있느냐. 나는 30여 년 야당 생활에서 온갖 정치 공작을 이겨낸 사람이다. 노 대통령이 주변 사람을 잘못 쓰고 있는 데 실망했다."

    노 대통령은 4월 8일 밤 노재봉 비서실장을 내 집으로 보냈다. 노 실장은 노 대통령과 내가 회동해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했고, 나도 이를 받아들였다. 난 마침 4월 10일 부산 서구 지구당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갔다가 돌아오는 대로 노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말했다.그런데 4월 10일 박철언 장관이 난폭한 발언을 했다. 그는 김영삼 씨의 민주계가 합당 때 합의하지도 아니한 대표 최고위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함으로써, 내가 그를 해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5월 전당대회에서 짤 지도체제 정비와도 관계가 있는 것처럼 주장했다. 그는 합당 과정에 있었던 일이나 소련 방문에서 있었던 일로 나를 손상할 수 있다고 폭언했다.

    합당 선언을 한 날로부터 불과 75일. 지도 체제를 정비할 합당 후의 첫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둔 때였다. 제2의 정계 개편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든 그 어느 것을 위해서도 적절한 것도 올바른 것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도발이었다. 그는 의욕은 넘쳤을지 몰라도 경험의 부족을 드러냈다. 이 책임은 박 장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노 대통령에게 따질 일이었다.박철언 장관은 대통령의 중심 브레인이었고, 북방 외교에서나 합당 교섭에서나 항상 대통령을 대리했다. 그의 발언은 대통령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고 모두들보고 있었다. 그의 적절치 않은 발언은 이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합당 과정에 세 총재 사이에서나 논의되었을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민자당 내에서 국민의 신망을 받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극 밀겠다. 당에 그런 사람이 없으면 외부에서 찾아서라도 밀어 줄 용의가 있다."

    이 말은 통합 직전이라는 그때 그 상황에선 총재의 발언일지라도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항차 대통령의 참모인 정무장관의 발언으로서는 탈선이었고 대통령의 경고가 진작 있어야 했는데, 없었기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일까지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