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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민자당의 출범


통합 민자당의 출범


    4월 17일 노 대통령과 회담했다. 김종필 최고위원 그리고 박태준 최고위원 대행도 동석한 4자 회담이었다. 박철언 의원의 발언 파문을 포함해 여러 문제들이 사전에 많이 조정되었다.김종필 최고위원이 청와대와 나 사이를 오가며 매듭을 푸는 데 애를 썼고, 여러 사람들도 사태를 바로잡는 데 힘을 보탰다. 그랬음에도 그날 청와대 회담은 6시간 넘게 걸렸다. 넷이서 얘기하다 서재로 옮겨 대통령과 단 둘이서 장시간 얘기했다. 모든 문제를 솔직하고 기탄없이 이야기했다. 체면을 돌보고 존중하고 양보하는 것으로는 벽을 허물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회담 후 발표에서 당의 내분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보궐선거에 깊게 반성하며 완급과 우선 순위에 입각한 국정 전반의 개혁을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이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당의 내분은 분쟁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던 평지 풍파였다. 나는 이 내분이 우리가 합당하던 때의 현실 인식이나 그에 기초한 사명감 같은 것들을 훼손한 것이 얼마나 큰 손실인지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도 이 점을 인정하면서 이번 사태에 제1의 피해자는 민자당이고, 제2의 피해자는 대통령 자신, 그리고 제3의 피해자는 김영삼 당신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피해자의 순위에서는 대통령과 나를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대통령의 말을 수긍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런 정도의 어긋남까지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만큼 그날은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보궐선거에 대한 반성에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정부 각료 기구 특히 안보 공안 기구의 업무에 한계를 새로이 설정하고 민주적 관행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확인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날 개혁의 내용과 속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보궐선거와 관련해 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한 반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시간이 길었던 데 비해 발표문이 짤막했고, 또 회담 이전에 있었던 사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비친 것 때문에 뒷얘기가 두고두고 떠돌아다녔다. 대통령과 나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든가 내가 가지고 갔던 노란 서류 봉투에 관한 것 등이 흥미의 대상인 듯했다. 그러나 소문으로 떠돌아다닌 이야기는 억측이거나 과장이 많았고, 실제로 그런 것들은 그날 얘기된 것 중 중심 문제는 아니었다. 헌정사에 남을 대전환을 해놓고 그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 그날 회담의 성과고 합의였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새로운 정무장관에는 김윤환 의원이 임명되었다. 김윤환 의원은 사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친구이면서 동시에 나하고도 가까운 인물이다. 또 그는 5공과 6공의 정권 교체기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아 권력 이동의 복잡함을 체험한 드문 존재이기도 했다.나는 김윤환 의원의 역사의식에 공감해 왔다. 특히 "다음 집권자는 TK, 군 출신, 노 대통령의 친인척은 안된다"는 그의 발언은 인상적이었다. 이런 발언은 용기와 소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과 내가 긴장 관계에 있을 때면 "노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김 대표가 안된다는 말씀을 한 적이 없다"며 두 사람이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회복하도록 노력했다.

    5월 9일에는 창당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 체제도 바로 세웠다. 창당 선언으로부터 177일 만에 합당의 기초 작업을 끝내 통합 민자당이 출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