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헌이 부결될 1%의 가능성에 매달려 표결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최선을 다해 개헌을 막는 것이지 막지 못한 책임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또 공화당 안에는 양심으로는 개헌을 반대하는 의원들도 상당수 있다. 나는 그들이 반대표를 찍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양심과 권력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할 기회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우리는 표결 이전에 하는 마지막 찬반 토론 중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농성은 표결을 반대해서가 아니고 여당이 납치해 간 반대 토론자를 풀어줄 것과 의사당을 포위한 경찰을 철수시키라는 것이었다.나는 의회의 토론 기능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토론은 국론 조정의 과정이다. 토론을 통해 의견이 조정 통합될 수도 있고 다수결로 결말지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보수파는 반대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알리고 반대의 기록을 축적하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구하는 것이다.심의 거부와 원천 봉쇄와 그에 대응하는 날치기는 의회의 포기다. 따라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결행할 일이 아니다. 특히 민주화된 의회제 아래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 나는 오늘날의 국회는 제3 별관 같은 것을 본회의장으로 삼거나 경위권을 발동하는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되리라고 믿었다.
이 무렵 김덕룡 황병태 박철언 박준병 의원의 4인 협상 대표는 합당 후의 지도 체제 문제에 대해 절충을 벌였다. 당초 통일민주당의 안은 대통령과 당 총재를 분리하자는 것이었다. 반면 민정당측은 대통령과 당 총재의 분리시엔 당 총재가 다수 계파인 민정계를 통솔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절충 끝에 1990년 5월로 예정된 공식 창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제를 신설, 당무를 관장하고 대외적 문제에 대해선 당 총재인 대통령이 처리하기로 합의하였다.
통합의 범위, 권력 구조, 지도체제에 합의한 노태우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 총재 그리고 나는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을 선언했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든 한국 정치의 지각변동이다. 3당 합당 선언 직전까지도 국내외 언론은 1월 5일 통일민주당 공화당 양당 합당 추진 쪽에만 신경을 집중시켰던 듯했다. 자연히 일반 국민들의 충격은 상당했다. 그러나 각종 여론 조사들을 보면 60% 이상이 3당 합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 합당의 한 주역으로서 국민들에게 매우 고맙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