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4인 협상 대표, 구체적인 합당 방안 논의


4인 협상 대표, 구체적인 합당 방안 논의


    나와 김종필 총재와 얘기를 진전시키던 무렵에 박철언 황병태 의원간의 대화도 상당히 진전되었다. 노 대통령측에서는 박 황 채널에 협상 대표를 보완하여 대화를 더욱 구체화시키자고 제의했다. 나는 이같은 제의에 따라 오랫동안 나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김덕룡 의원을 보냈는데 노 대통령측에서는 박준병 의원을 가세시켰다. 위의 4인 협상 대표들은 이후 타워호텔 신라호텔에서 만나 합당의 범위, 합당 후에 추진할 권력 구조, 지도 체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우선 합당의 범위에 대해 민정당측은 공화당을 포함시킨 3당 합당으로 하자고 했는데, 이 점에 관해 우리측에서도 이의가 없었다. 합당 후 권력 구조 문제에 대해서는 민정당측이 내각제 개헌을 주장하면서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한다.

    "대통령 중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과 필리핀의 예를 보십시오. 미국은 공화당 집권시 여소야대라는 고질적인 정치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필리핀처럼 경직된 대통령제 하에서는 정치가 자주 부러지지 않습니까? 내각 책임제를 하면 국정의 중요 고비마다 선거를 통해 위기 탈출이 가능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내각제를 하는 나라들 중에 정치 선진국이 많지 않습니까? 더구나 영 호남 갈등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대통령 직선을 하면 지역 감정이 폭발할 것입니다."

    이런 민정당측의 방침을 우리 협상 대표에게 보고받은 나는 일리는 있는 견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각제가 권력 구조의 한 제도로서 대통령제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고 믿고 있었다. 또 민주화가 되면 대통령 직선제의 존재 가치가 절대적이라고는 판단되지 않았다. 내각제로 개헌하면 지역감정의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앞으론 여소야대의 혼란 가능성도 없어짐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나는 신중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김덕룡 황병태 의원에게 이런 지침을 주었다.

    "내각제 개헌이 합당을 위해 불가피하다면 저쪽과 얘기는 진행시켜 보시오. 다만 개헌은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되어야 가능한 것이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것도 야당이 반대하는 개헌을 무리하게 했던 때문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중임제한을 철폐한 4사 5입 개헌이 비극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도 3선 개헌으로 독재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닙니까? 개헌을 하려면 두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우선 여야가 합의를 하고 다음으론 국민 투표에서 적어도 70%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김대중 총재와의 합의 또는 양해가 없는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내각제에 대한 김대중 총재의 의향도 나와 대동소이하고, 그의 정치적 입지에 있어서도 대통령 직선제보다 내각제가 특별히 불리할 것이 없으리라고 보았다. 내가 알기로는 김대중 씨는 원래 내각제 신봉자였으며, 1980년대 초 미국에 가 있을 때도 내각제를 선호했고, 1987년 나와 후보 문제를 논의했을 때도 내각제를 거론하기도 했다.

    나는 3당 합당으로 개헌선을 확보하더라도 결코 여당 단독으로 개헌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야당의 극한 투쟁이 벌어지면 민주화나 정치 발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