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국회의원에 입후보했을 때는 전적으로 집에 있는 돈을 선거 자금으로 썼다. 우리 집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선거 자금이라는 것이 별로 큰 돈이 안 들던 때다. 자유당 때도 그랬고 공화당 정권 초기까지도 정치 자금을 크게 쓰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제일 큰 몫이 선거 자금인데 야당은 돈이 없다는 인식이 있어서 많은 돈이 들지 않았다.특히 심하게 탄압 받는 선거 운동할 때는 유권자가 자기 이름도 밝히지 않고 돈을 보태 주었다. 그런 돈이 큰 돈은 아니지만 야당 운동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돈이 부족하다느니 이런 말 안 하고 몸으로, 말로 선거 운동을 하는 용기와 힘을 주게 된다.
재선, 3선 이렇게 정치활동을 해가는 사이 친구들도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다져갔고 나도 쓰임새가 커졌고 그들한테서 도움을 받았다. 나는 친구 친지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정치 자금을 만들기 위해 소위 이권 운동이라는 것을 한 일이 없고 어떤 일과 결부해서 돈 만드는 일을 금기로 했다. 내가 도움을 받았으나 그 반대 급부로 일을 거들어 준다는 것으로 나를 도와준 이들을 도운 일은 없다.
나는 나를 돕는 친구들을 돕기는 커녕 부담만 되는 야당 인사였다. 나는 도움 받은 돈을 정치에 모두 투입한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누릴 수 있었던 혜택은 부친이 생활을 맡아준 것이다. 내가 집안 살림살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은 각박한 정치 풍토를 걸어오던 나에게는 대단한 복이었다.어쨌든 국민학교, 중학교, 대학교에 다녔고 정치생활을 오래 해서 각계 각층에 여유있는 친구들도 있다. 이 사람들이 마음으로 정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1970년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서고 총재 경선자로 나섰던 때는 자금에서 고통을 겪었다. 돈은 필요한데 구할 데가 없었다. 단돈 십 만원, 백만 원이 아쉬웠다. 어떤 사람이 내게 돈을 주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 사람은 사업이나 장사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친구들이 내게 돈을 주려 해도 줄 수가 없다. 보통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당내 경선이 있게 되면 당국은 나를 철저하게 봉쇄했다.사실 야당 안에서 나는 그런대로 돈을 만들 능력이 있는 쪽에 속했다.
그런데 일이 있을 때는 봉쇄를 당해 돈을 구하지 못했다.지명 대회 때인데 마지막 날 유진산 총재가 내가 추천했으니 득표 작업도 내가 전담하겠다. 자금하고 몽땅 보내라고 했다. 남은 자금을 몽땅 챙겨보니 1백 80만 원뿐이었다. 1974년 대회 때는 정예 요원 30여 명이 활동했는데 그들의 여비 조달도 숨이 가빴다. 1979년 대회 때는 아예 집을 잡혀 대출받은 은행 돈을 썼다.
경선이 임박하면 돈을 못 구하니까 대비해서 미리 자금을 만들어 두자고 내게 얘기를 했다.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고 내가 나무랐다. 정치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일은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축적하는 일이다. 돈은 일을 하기 위한 방편이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필요한 돈은 구해지기 마련이고 없으면 없는대로 된다. 다음에 닥칠 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모으게 되면 그것이 치부(致富)로 연결되고 부패에 물들게 된다.권력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돈은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