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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결정을 하는 이유


단독 결정을 하는 이유


    물론 정치 세계에서 주고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서로 돕는 것이고 함께 함으로서 유익함이 있어야 한다. 그 유익함의 질과 내용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쪽이 저쪽에게 혹은 저쪽이 이쪽에게 주는 반대 급부가 유대를 이어가는 첫번째가 되면 그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것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대충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해 왔던 일이 있다.흔히 지도력이란 자기 희생이라고 말한다. 고난을 함께 하고 앞장서야 한다. 뒤돌아보면 1986년, 1987년 몸으로 부딪치기도 많이 하고 최루탄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데모하면 언제나 내가 앞줄이어야 했다.

    개헌 1천만 서명을 시작했을 때다. 12일 서명을 시작했는데 13일 아침 4백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를 차단해 버렸다. 11시쯤 민추협에 도착해 봤더니 역시 전경대원 2백여 명이 저지선을 치고 있었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려니까 경찰이 앞뒤로 나를 포위해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가만히 생각해보니 신민당사에도 못 들어가고 민추협도 밀리면 출발에서 밀리는 것이 되고 사기도 떨어질 것 같았다. 더욱이 서명을 극비로 추진했기 때문에 당 간부들도 13일부터 모두들 당 사무실에 나와 서명을 하게 되어 있었다.그래서 내가 현장에서 선언을 했다.

    "현 정권에 힘으로 되는 일이 없음을 알려 주고 나의 결연한 개헌 투쟁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내가 만든 민추협 사무실에 내 발로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선 채로 기다리겠다."

    그 날은 진눈깨비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잠바를 가져오게 해서 입고 다섯 시간을 서 있었다. 물론 점심도 굶었다. 오후 1시쯤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니까 경찰이 대형버스와 레커차로 우리를 시민들로부터 가려 버렸다. 내가 다섯 시간을 그대로 서서 버티니까 경찰도 더는 어쩔 수 없었는지 실력 행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봉쇄를 풀었다.

    내가 정치를 해오는 동안 측근 동지들에게 때론 원망도 듣고 섭섭하다는 얘기도 들은 일이 있었다. 그 이유가 자기네와 상의 없이 단독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나는 중요한 결정은 혼자서 한다. 두 가지쯤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비밀도 유지하고 동지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나는 참 오랜 기간 감시를 받아왔고 정부가 싫어하는 일을 많이 결행했다.

    김형욱 정보부장 때인데 내가 어떤 일의 책임을 지워 정보부장을 문책하라는 성명을 낸 일이 있다. 이 성명이 나간 뒤 정보부가 이상한 명목을 부쳐 내 측근도 데려가고 심지어 기자 몇 사람도 데려가 조사했다. 알고 봤더니 정보부장은 이 일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문책하라 하는 성명을 내도록 내게 건의했거나 의논 상대가 된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내서 혼내주기 위한 것이었다.결정은 나 혼자 하는 것이 낫지 동지와 의논한 것이 알려지면 나는 함부로 못 다루니까 화풀이로 보복을 동지한테 한다. 한때 독재 정권이 그렇게 했다.

    비밀 유지도 같다. 공화당 정권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하던 때인데 그때 총재와 부총재, 3인의 총재단 그리고 총무인 나 이렇게 다섯이서 전략회의를 했다. 그런데 비밀로 해야 할 우리 쪽 회의 내용이 자꾸 새나갔다. 그때 우리 부총재 세 분 중에서 이런 걸 새나가게 할 사람은 없었다.그런데 의논을 다섯 명이 하니까 보안 의식이 엷어진다. 회의를 하고 측근들이 물으면 별 생각없이 얘기를 해주고 그는 또 다른 데 얘기하고 이래서 새나간다는 판단이 섰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그때 공화당 쪽 반대파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분들이 당신네 회의 내용이 새고 있다. 믿고 얘기할 수 없다고 해서 알았다. 그래서 내가 유 총재하고 얘기해서 개헌 저지 대책은 총재, 총무 둘이서만 의논해서 결정해 집행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아무것도 새나가지 않았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내 비서나 측근들에게 편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는 당국에서 뭣하나 별로 소용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까지 알아내려고 애를 쓰던 때다. 내 비서나 이런 사람들이 그들의 취재 대상이다. 말하자면 뉴스 소스다. 서로 국회서도 만나고 당에서도 만나니까 야박하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만나는데 얘기해 봐야 나오는 것이 없다. 얘기를 안 해주어서만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일은 알지 못한다. 그런 점도 있지 않았나.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상의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상황을 검토하여 내가 혼자 결정했다. 의논해서 그거 반대다 한다 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일 것도 아니다. 그럴 때 나는 의논하지 않는다. 내가 1970년 지명전에 나서기로 하던 때 동료나 선배 측근들과 상의를 안했다. 내가 사전에 한 일은 유진오 총재 병문안을 한 것뿐이다. 선언을 하고 나니까 중진 노장 원로들이 일제히 내게 포문을 열었다. 나는 십자포화를 맞는 형세였다. 내 동료 동지들은 의논도 안 하고 혼자서 불쑥 해 버렸다고 원망하고 심지어 경솔하다고 비방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분들은 내가 사전에 의논했으면 안된다고 했을 사람,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정세를 보자고 했을 사람들이다. 결행하자고 나설 사람은 없었다. 결국 의논했다 하더라도 내가 만류했는데, 내가 반대했는데,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고 할 사람들이었다. 내가 결정하고 결행한 많은 일들이 그랬다.그런데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에게 "남의 얘기를 많이 들으시오. 그리고 판단은 혼자 하시오."라는 경험의 가르침을 들려주었다는 걸 연금 중에 읽었다. 남의 얘기는 많이 들어라. 이것은 판단에 앞서 내린 문제를 바르게 충분히 파악하고 결정을 내린 후 그 결정이 미칠 영향까지도 면밀히 헤아리라는 의미로 해석했다.내가 해온 방식은 그런 점에서 미흡함이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할 때면 드골의 경험의 철학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