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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믿는 게 자랑스러웠다"


"동지를 믿는 게 자랑스러웠다"


    민주당 창당 후 지방 유세를 많이 했다. 그 전까지 야당은 원내 정파 내지 유지 구락부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 정당이 아니었다. 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국민 정당에 눈을 떴다. 정치 계몽에 정당 홍보 두 가지 목적을 띤 지방 유세였는데 나는 최연소 의원이라는 것 때문에 신익희 선생, 조병옥, 장면 박사 등 당 수뇌부 유세반에 따라다니는 혜택을 누렸다. 그때는 8할이 농민이고 가는 곳이 모두 농 어촌이었다. 벽촌을 다니다 보면 주막집에서 김치를 안주로 해 막걸리를 마시는 것으로 요기를 했다. 신익희 선생, 조병옥 박사 두 분은 맛있게 마셨고 송구스러워하는 농부들에게 막걸리 잔을 권하고 곧 친숙해지고 했다.내 기억에 깊게 남아 있는 농촌은 너무 가난했다. 그러나 정이 넘치고 내일에 희망이 있고 정치와 정치인들을 신뢰하던 1950년대의 농촌이다."

    내가 민심의 위대한 힘을 본 것은 1956년의 대통령 선거 때다. 그때 신익희 선생과 장면 박사가 러닝메이트였는데 나는 신익희 대통령 후보를 따라다녔다. 그날 다섯 군데를 거쳐오느라 밀양은 예전보다 약 2시간 늦게 도착했고, 어두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시간이 늦었으니 나는 인사만 하고 바로 신익희 선생을 모시려 했더니 나보고도 연설을 하라고 했다. 내가 짧게 끝내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신익희 선생의 마지막 연설을 들었다.그날 연설을 끝내고 저녁을 먹고 여관에 와서 잠을 청한 것이 12시쯤이었는데, 그 한밤중에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방문자도 있었다.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야당의 힘은 민심뿐이었다. 4대 때부터 자유당은 관권 금권에다 탄압하고 투 개표 부정까지 했기 때문에 야당은 국민의 지지열기로 대항해야 했다. 국민의 편에 있다고 국민이 믿어 줄 때 관권 탄압, 금권 그리고 부정 선거에서 살아남고 당선할 수 있었다.

    유신 체제하에서 내가 당 총재 선거에 나가 당선할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의 뒷받침이다. 민심이 내게 있었기 때문에 유신 권력을 이기고 유신 권력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 경쟁자를 이길 수 있었다. 나는 민심의 바다를 항해해 왔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특별한 직관력이나 흔히 말하는 동물적 감각을 가진 것이 아니다. 나는 가장 평범한 상식인일 뿐이다. 나는 민심과 역사에 성실하려고 노력했다.

    국민에 대한 나의 희망과 믿음은 틀린 일이 없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참 어려운 시대를 가는데 김 총재 정치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계속해 넘어가는 형국인데 계보나 동지들을 이끌어 가는 철학 같은 게 있느냐. 비결도 좋고, 세 가지만 말해 달라는 주문을 받은 일이 있다.

    나는 첫째는 우리가 국민 편에 서 있다는 도덕적 바탕이다. 이것 없이는 고난을 함께 할 수도 견딜 수도 없다.둘째는 이런 시대 그런 사람과 유대를 맺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런 마음을 공유해야 한다. 나는 내 동지들이 나 때문에 수없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변함이 없다. 이런 동지와 유대를 맺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동지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셋째는 정리(情理)이다. 중국 고사를 보면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돈과 권력과 지위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지만 말년에는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돈이나 권력, 지위 그런 것이 아니고 인간 관계, 인간의 정리였다는 회한의 말을 남겼다는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