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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에 따르는 정치


민심에 따르는 정치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도전해 온 것이 나의 정치다. 내가 세웠던 목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림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1979년 유신 정권과의 대결에서도 나는 종말을 예언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때 내가 화가 나서 했던 말이 아니라 유신 정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985년의 2.12 총선 때도 모두가 신민당은 제3당이 된다고 하던 때 나만은 제1 야당이 된다고 했고 그렇게 되었다. 1986년 개헌 1천만 서명 운동을 할 때도 직선제 개헌은 된다고 했고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평가가 둘로 갈린다.'긴박하게 전개되는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는 주역이 예언도 하고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상황을 만들어 가는 예는 드물다. 김영삼 씨는 그런 드문 일을 해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한 것은 칭찬에 해당한다. '목표 지향적이고 목표에 이르게 하는 행동에 비약이 많고 거칠다. 그러나 기회를 포착하는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평가를 낮추고 싶어한다.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굉장한 자신감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한 글도 있다.

    나는 직관력이 뛰어나다거나 남다른 감각을 가졌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 예언자란 더더욱 어림없는 얘기다. 성격은 치밀하지도 자상하지도 않다. 그것이 내 결점이다. 내가 정치적 결정을 하고 선택을 할 때 그 기준은 민심이다.1987년 초 신민당에서도 내각제 타협 얘기가 나오고 정부 여당은 국민이 마주 달리는 열차 꼴이 된 여 야의 위험한 대결이 아니라 타협을 바란다고 홍보했다. 내 주변에서도 타협도 고려해 보라고 했다.

    "정부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국민 국민 하는데 나는 국민이 무엇인지 숱한 선거를 통해서 안다. 나는 민중 속에서 그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며 자랐다. 지난해 봄부터 해온 개헌 대회에서도 경험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 파묻히면 그 속에서 민중의 숨결, 소망, 기대를 듣는다. 국민들이 나를 알듯이 나도 국민들을 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갔다. 1986년인가 관훈 클럽 토론에서 농 어민의 삶의 현장에 대해 인상에 남았던 일이 있는가를 질문 받은 일이 있다. 대답을 하면서 내가 항상 민심 가까이에 있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나는 그날 이런 답변을 했다.

    "내가 해방이 되고 경남중학교(요즘의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방학이 되어 집에 가면 어머니가 나의 귀향을 반기는 동네잔치를 했다. 이 자리에서는 해방정국이나 농 어촌의 어려움 같은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모자란다는 얘기다. 배는 낡았고 그물도 구하기가 어렵고, 그런 얘기를 하면서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내가 도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는 가슴이 무겁고 답답했다. 이제 우리가 나라를 찾았으니 내가 정치를 해서 가난한 어민들이 소망하는 일을 이루어나가는 일을 해야 되겠다.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