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신민당에는 이택희 이철승 의원의 징계 문제가 계류되어 있었는데 징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징계할 명분이 약하거나 징계안을 의결할 숫자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징계 대상자가 폭력으로 회의를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이철승 씨는 징계 얘기가 나오자 지지자라는 청년 수백 명을 동원해 중앙당을 점령하고 징계 논의를 안한다는 다짐을 받을 때까지 당 기능을 마비시키는 실력 행사를 했었다.이들이 실력행사를 하면 전당대회가 어렵다. 이민우 총재가 이들과 한통속이 되고 권력이 비호하면 신민당은 그들을 막을 힘이 없다. 그런데 그때 신민당은 전당대회도 하고 징계도 해야 할 판이었다. 김대중 씨도 어떤 일이 있어도 징계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그때 많은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중심 문제는 김대중 씨와 이민우 씨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것이었다.이민우 총재와는 오랜 정리가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부총무도 함께 했고, 1979년엔 총재, 부총재 사이였다. 민추협을 만들 때도 내가 맨 먼저 상의한 사람이 그 분이다. 나와 접촉하기를 꺼리던 캄캄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분은 입회 서명을 받으러 이 집 저 집을 다녔다.
이 총재는 5.17 후 정권의 유혹을 뿌리친 분이다. 생활에 쪼들리면서도 나는 가난하지만 대통령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분이 총재가 되면 야당이 바른 길을 가겠구나' 라는 믿음을 가지고 이 분을 총재로 밀었고 그분의 종로 중구 선거 사무장 역할을 했다. 이 총재가 종로서 입후보했을 때 첫 기자 회견에서 자기는 지금 짓고 있는 가건물의 관리인이라고 했다.
당선한 후 내게 와서 '나는 김 총재가 시켜서 총재를 맡은 것이니 규제법에서 풀리면 총재를 맡아 주시오' 라고 했다. 나는 '무슨 소리냐. 내가 총재를 안 해 본 사람도 아닌 마당에 그런 생각 말고 열심히 하시라'고 말했다. '역사와 시간은 전두환의 것이 아니라 신민당의 것이니 서두를 것 없습니다' 라고도 했고, '그들은 필경 일을 저지를 것이며 신민당 안에는 복잡한 사람이 많아 썩 잘하기는 어려울지라도 도울 수 있는 데까지 돕겠으니 염려 마시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