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민주화 7개 항의 이면


민주화 7개 항의 이면


    그때 당직자들은 이 총재가 과민 반응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총재는 그때 이미 전당대회를 앞당겨 이 총재를 바꾸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당대회 앞당기자는 건 12월 하순 김대중 씨한테서 처음 나왔고 10월엔 그런 논의도 없었는데 누군가가 장난을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서둘러 내가 이 총재를 만났다. 이 총재도 그 사이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안 것 같았다.봄이 되면 지구당을 돌며 김 총재 손을 들어 주겠다기에 그보다는 개헌 투쟁을 이 총재가 올 봄에 결실을 보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일이라고 했다. 이 총재하고 오해를 풀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잠깐 동안의 평화였다. 2주일쯤 지난 연말 이민우 총재는 송년 기자 간담회에서 다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신민당을 깨는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것이 이민우 총재가 내놓은 민주화 7개 항이다. 구속자 석방, 사면 복권, 언론자유 회복 등 7개 항은 야당이 주장해 온 것을 종합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말썽은 그 내용이 아니라 이면이었다.

    이민우 총재는 직선제 개헌과 병행하는 요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부 여당이 7개 항을 받아들이는 민주화 조치를 한다면 신민당은 내각제 개헌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씨가 지적한 대로 이것은 직선제 당론의 후퇴가 분명했지만 나는 이 문제를 확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총재가 다른 구상이 있다 해도 그것이 당론이 될 수도 없고 총재로서 당론에 충실할 사람이라고 믿었다. 김대중 씨가 이거 가만 둘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직선제를 포기한다고 하는 말은 없지 않느냐. 문제삼을 것 없다고 눌렀다.

    이렇게 해서 1986년은 조용히 넘어갔는데 정초에 김대중 씨가 문제를 삼고 이민우 총재는 반발하고 나서서 다시 문제를 확대했다.김대중 씨는 저쪽에서 내각제를 2월까지 통과시킨다는 것인데 이 총재가 이때 거들어주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민우 총재 쪽은 얘기가 정 반대였다. "민주화 하자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냐? 저쪽에서 민주화 조치하면 내각제를 고려한다 해도 그것이 어째서 나쁜가? 김대중 씨는 지난 11월에 직선제 개헌이 되면 대통령 후보로는 출마 않는다고 선언해서 직선제 고리를 풀어주고도 왜 다른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그때 참 이상한 것이 나하고 만나면 이야기가 풀리고 이제 됐나보다 하고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려고 하면 분쟁이 다시 일어났다. 그때 이민우 총재하고 두 차례 만났다. 어쨌든 민주화 7개 항에 오해가 있으니 재론하지 말자 해서 이 총재도 그러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다.그런데 김대중 씨는 여전히 이민우 총재를 기피하고 이틀쯤 지나면 이 총재는 민주화 7개 항을 되살리곤 했다.

    나는 3자 회담을 하자고 했다. 개헌 추진 문제, 8월 전당대회 문제에 대해 셋이 의논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김대중 씨는 이민우 총재와 만나는 3자 회담은 안 가겠다고 했다. 김대중 씨 말이 자기를 가리켜 당원도 아니면서 간섭한다고 이런저런 말을 하니 신민당 일은 총재와 고문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