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총선에서 민주화 바람을 일으켜 야당을 하나로 만들고 직선제 개헌의 물꼬를 튼 것이 신민당이다. 나는 정치 규제에 묶인 상태에서 신민당이 들러리 야당인 민한당을 누르도록 이끌었다.신민당이 개헌 운동,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되게 한 것도 내가 한 일이다. 신민당 2년 3개월에는 나의 땀과 눈물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 신민당을 버리는 고통과 슬픔과 아쉬움이 나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신민당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헌을 하기 위해서다.이민우 구상이라고 해서 이 총재가 내각제로 기울고 총재 자리에 연연해서 전당대회에도 안 나가려고 하고 이택희 이철승 씨가 폭력으로 당을 점거하고 그런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개헌에 관한 의견 차이는 조정할 수도 있고 전당대회를 꼭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내면은 불신이다.
당시 신민당의 중심은 나와 김대중 씨였다. 이민우 총재는 나 대신이었다. 결국 우리가 당을 단합해 개헌 투쟁을 해 나가자면 김대중 씨 쪽의 협력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나와 김대중 씨 그리고 이민우 총재 사이의 신뢰와 협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것이 처음부터 삐걱거렸다.그때 나와 김대중 씨는 1주일에 2차례 민추협에서 정기적으로 만났다. 만나게 되면 사면 복권과 관련해 신민당의 원내 전략에 대해 김대중 씨의 요청이 많았다. 둘이서 의논 끝에 합의가 되면 이민우 총재한테 내가 연락을 해주었다.그런데 이것을 간섭이라고 보았다. 당내의 비민추 계열 사람들 그리고 일단에서 사사건건 두 김씨가 간섭한다. 이민우 총재는 허세라 하고 이 총재의 자존심을 건드렸다.거기다 사면 복권이 말썽이었다. 사면 복권 문제에 성의가 없다고 불만인데 어느 때인가는 여당 대표를 만나고 그것을 비밀로 했다가 곧 알려져서 오해를 사기도 했다. 내가 김대중 씨에게 "이민우 총재에 대해 불신하는 것은 나를 불신하는 것과 똑같다. 너무 그러지 말고 좀 지켜보자."고 말한 일도 있었다. 결국 내가 이러지 말고 3자 회담을 하자 해서 8월 전당대회 후에는 정기적으로 셋이서 만나 조정을 했다.
셋이서 만나도 보조가 안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미국 여행중일 때 두 분이 만났던 모양인데 거기서도 다투었다고 했다. 김대중 씨가 이 총재한테 "이 총재가 계보 만든다는 것 알고 있다. 계보 만들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라고 얘기도 하고, 이 총재에게 "나의 사면 복권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여당 쪽에다 말만 할뿐이지 이 총재나 김동영 총무나 모두 나의 사면 복권을 위해 강력한 투쟁을 할 결의를 보여준 일이 없다."라고 얘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