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질문하고자 합니다.
첫째, 연말까지 남아있는 9개월 중 국민투표와 선거에 필요한 기간을 넉넉잡아 두달로 잡는다 할지라도 개헌협상에 할애할 수 있는 기간이 7개월이나 된다는 사실을 왜 구태여 외면하는가.
둘째, 우리가 지난 1년간 일관되게 대통령중심 직선제 개헌만을 주장해 왔으나 개헌정국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시도로서 나는 김대중 의장과 더불어 종래의 입장에서 일보 양보하여 선택적 국민투표를 제의했으며 그 결과에 승복하기로 약속한 바 있습니다. 국회 개헌특위 구성 당시 여야가 합의했던 '국민의 자유로운 정부선택권을 보장하는' 개헌에 이의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미 제기한 바 있는 선택적 국민투표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를 거부했는가.
이상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명과 답변을 현정권이 하지 않는 한 전두환 대통령이 뒤늦게 제기한 호헌론은 결국 장기집권을 위해 예비된 각본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야하면 진실로 모자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현정권의 민주화 의지이며, 이 나라에서 부족한 것은 야권의 대응의지가 아니라 정부.여당의 대화 의지와 자신감인 것입니다.우리 당의 창당과정에서 끊임없이 겪고 있는 현정권의 탄압이 이를 증거하고 있으며, 민주세력의 재창당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야비하기 짝이 없었던 공작정치의 실상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우리 모두가 명백히 기억하고 있는 일이지만 현정권이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던 호헌론을 꺾고 국회를 통한 민주개헌에 승복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현행 헌법이 내포하고 있는 반민주적, 반역사적, 반국민적 독소조항을 더 이상 고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독소조항을 존치시키는 한 제5공화국이 출범 초부터 겪어야 했던 정통성 시비가 결코 종식될 수 없었으며, 이들 독소조항을 제거하지 않는 한 현정권이 말하는 '선진조국창조'나 '통일기반의 확충'은 절대로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제5공화국이 스스로의 허물을 씻어내고 대한민국 역사에 나름대로의 기여를 한 기간으로 기록될 수 있기 위해서는 현대통령의 임기 중에 이러한 작업, 다시 말해 거듭나는 작업이 완결되어야 했던 것이며, 바로 이와 같은 국민적 안식 때문에 개헌특위의 구성이 온 국민의 환호와 기대 속에서 출범했던 것입니다.우리 야당과 민주세력은 현정권의 거듭된 과오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헌의 절차를 통한 상호협력으로 화해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어 왔으며, 이것은 현정권과 우리 민주세력 그리고 현정권과 4천만 우리 국민이 화해에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따라서 전두환 대통령이 어제 천명한 호헌으로의 회귀는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냈던 단 한 가닥의 길, 단 한 가닥의 화해의 길을 폐쇄하려는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나는 이 자리를 빌어 거듭 지적해 두고자 합니다.
화해를 청해야 할 쪽은 민주세력이 아니라 민주세력을 짓밟았던 현정권이어야 하며, 진실로 국민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쪽은 정보공작정치에 저항해서 재창당이라는 형극의 길을 택한 야당이 아니라 이를 강요했던 현정권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사실을 접어두고 내일의 희망을 찾기 위해 정부 여당에게 제의하고자 합니다,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계산으로 시간부족을 내세우거나 자신의 개헌의지 결여를 남에게 덮어씌우지 말고 즉각 민주개헌을 위한 실질적 대화에 응할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돌이켜 보건대 지난해 우리는 끊임없는 원내외 토론을 통해 대통령중심 직선제와 내각책임제의 내용과 허실을 충분히 논의해 나름대로 국민의 뜻을 확인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정권에게 부족했던 것은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지, 민주대의를 위해서는 언제든지 야당을 할 수 있다는 각오였으며, 또한 어떤 종류의 정치보복도 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거듭된 약속에 대한 신뢰였습니다.이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책임있는 사람끼리의 허심탄회한 실질적 대화가 있어야만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진실로 개헌과 관련해서 '정치적 사심'이 없다면 실질적 대화를 통한 타결에의 길은 넓게 열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친애하는 국민여러분!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참으로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국난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러분의 엄청난 용기와 단호한 행동에 힘입어 거의 모든 난관을 훌륭하게 극복해 내었으며, 이제 우리는 '정치의 후진성'만 탈피한다면 세계 모든 나라로부터 존경과 기대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이른바 당면한 국가대사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민주개헌과 성공적인 올림픽의 개최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제입니다. 마차를 말 앞에 매어서 끌고 갈 수 없듯이 민주개헌의 성취 없는 성공적 올림픽의 개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현정권이 만약 우리의 제의를 거부한다면 우리 당이 아무리 대화와 타협의 정신 그리고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자 해도 국민적인 저항과 궐기를 회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와 같은 비극적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며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임을 천명하는 바입니다.필리핀의 아키노 정권이 장기 독재에 시달려 온 국민과 나라를 훌륭하게 이끌고 있는 것은 '사랑과 화해'의 위대한 힘입니다.
끝으로 나는 전두환 정권이 이것을 본받기를 바라면서, (1) 2천여 명에 달하는 정치범의 전면 석방과 김대중 의장을 비롯한 사면 복권을 단행할 것 (2) 김대중 의장에 대한 불법적인 감금을 즉각 해제하고 정치활동을 보장할 것 (3) 세계와 국민이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창당 과정에서 갖가지 방법으로 자행하고 있는 방해, 협박과 중상, 모략을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민주세력과 굳게 단합하여 국민이 열망하는 대통령중심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를 관철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당원동지 여러분과 민주 실현을 갈망하는 국민 여러분의 끊임없는 성원을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들을 지키실 것입니다.
1987년 4월 14일 통일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 김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