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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그날까지


민주화의 그날까지


    국민여러분!민주화추진협의회(民主化推進協議會) 창립 1주년을 맞아 우리의 기관지 [민주통신]을 속간하면서 벅찬 감회와 세찬 각오를 말씀드립니다.군사독재의 깜깜한 어둠 속에서 본인은 저 억울하고 원통하게 순사(殉死)하신 광주의 영령들과 그 가족 동지들과 아픔을 함께 하려고 지난 83년, 23일간 생사의 갈림길까지 나아가 단식을 하였고, 그 1년째가 되는 84년 5월 18일, 우리의 뜻을 이제는 힘으로 다시 모아 이 어둠을 깨뜨리는 새벽을 만들고자 민추협(民推協)을 만들었습니다.민추협의 탄생은 불과 수십명 또는 백여명의 모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암흑 속에 한 불씨를 던진 것입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 것입니다. 어둠은 그냥 있다면 천만년 어둠이지만, 불씨가 던져지고 불이 붙는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나는 감히 민추협의 탄생을 이에 비유하고 싶습니다.불씨는 불을 붙였습니다. 2.12총선에서의 신민당의 눈부신 진출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어둠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습니다. 동트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동터오는 새 아침을 손바닥으로, 낡은 헝겊조각으로 가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출발한 민추협이 이제 1돌을 맞았습니다. 그 탄생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암흑의 세계를 서광이 열리는 세계로 만들었듯이, 새벽의 어슴프레한 박명(薄明)이 아침의 찬란한 서광(瑞光)으로 비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경하는 동지요 지도자인 김대중 의장이 본인과 함께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여기에 노 선배님들과 연부역강한 새로운 투사인 동지들을 더욱 보태고 다듬어 기구를 확대 개편했습니다. 또 우리의 활동도 각 분야에서 양적으로 질적으로 넓히고 깊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원내의 신민당과 함께 재야의 민주투사 그리고 젊은이들과 함께 이 나라를 민주화하는 명실상부한 구심점(求心點)이 되도록 최대의 겸손과 정성으로 민추협을 발전시킬 것입니다.이제 민추협은 그 힘에서, 도덕적 정당성에서, 구국적 경륜에서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나아갈 것입니다. 본인은 이제 우리 민추협이 조국 민주화의 원동력이 되고 구심점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우리는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이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앞에 나아가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합니다.

    한편 우리는 반민주적 저항과 장애가 아직도 적지 않은 힘으로 잔존하고 있는 구체적 현실 가운데 이러한 목표들을 현실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이 점은 어떤 점에서는 재야 민주인사들 보다는 더욱 더 큰 책임을 느끼어야 할 것입니다.본인은 이 점을 젊은 동지들과 국민들에게 함께 이해를 구하고 각오를 새로이 하자고 환기시키고 싶습니다.동지여러분과 국민여러분에게 본인은 이제 새롭게 우리의 각오와 결의 그리고 여러분의 이해와 동참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우리 민추협은 앞으로 철통같이 단결할 것입니다. 어떤 박해에도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간교한 이간책이 있어도 여러분과 본인은 결코 분리되지 않을 것을 믿으며 또 호소합니다.김대중 공동의장과 본인은 거듭 단결과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나아가 여러분과도 이 호소를 거듭 약속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본인은 우리들의 희생과 봉사를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민추협을 만들었을 때 그것은 당장 아무런 대가(對價)없는 희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12총선에서 신민당의 진출로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앞으로 더 큰 희생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무 대가도 동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가, 정의가 우리를 위로하고 보답해 준다는 것을 믿고 민주화를 향한 우리의 희생을 다짐하고자 합니다.본인은 이 정권과 정부를 향하여 역사의 물결을 똑똑히 볼 줄 아는 현명(賢明)을 찾아 미망(迷妄)에서 깨어날 것을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습니다.이 정부와 정권이 그 출발부터 정통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역설하고 있지만, 그간의 치적이 그것을 회복하기는커녕 더욱 상실해가고 있어 마침내는 2.12총선으로 사실상 국민적 거부를 실증하고만 사실을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정부의 퇴진은 담당자 자신의 언명으로나 현행법의 명문 규정으로나 나타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정부의 출발과 행적과 속성으로 보아 그것은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이 정부가 민주화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정부가 민주화 일정을 밝히도록 해야합니다. 이 정부는 또 단임제(單任制)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말합니다만 정부의 이양(移讓)만이 국민적 요망이 아니라 민주화, 국민의 자유선택에 의한 정권교체가 국민적 절대 요망입니다.

    현행 대통령선거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이 자유로운 정부선택을 당초부터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 정부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강압으로 이러한 현행 제도의 독소들을 그냥 밀어붙인다는 생각은, 지난 총선의 민의를 아직도 전혀 읽지 못하고 정권의 고위책임자들이 솔깃한 인의 장막에 가리워 있거나 권력에 취해 맹목이 되었다는 것을 폭로해줄 뿐입니다.우리는 현행 헌법을 국민이 자유롭게 정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합니다. 즉 개헌에 빨리 합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당리당략이나 사욕이 아닙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걷잡을 수 없는 불신과 저항이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이 정부는 아직도 '반체제'니 '장외'니 하는 유신적 사고를 지속하고 있는데 독재와 부패의 체제를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민주와 양심의 소리는 반체제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유신정권의 붕괴에서 똑똑히 교훈으로 보았습니다.세계사의 흐름과 민족사의 맥락을 알고 순응하는 이 시대의 사명을 알고 깨닫는다면 현 시점에서 민주화의 평화적 성취는 그것만이 군사독재와 혼란을 함께 막는 길임을 알아야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두려움과 욕심과 원망이 없도록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우리의 단결과 희생이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앞에 그리고 우리민족 앞에, 영광을 바치기 위해 전진할 것을 기원합니다.

    1985년 6월 김영삼 공동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