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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기도가 끝나면 고문 회장단의 연설 순서로 이어진다. 김씨는 50여 명의 지지자들과 7시간 동안 서울 변두리 산을 등산하는 동안 나와 대화를 가졌다. 행동의 제약을 받은 이후 약간 몸무게가 늘었으나 건강해 보이는 그는 몸과 정신을 함께 보존하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등산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남부에 있는 두 지방을 제외한 이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우리 동지들이 자발적으로 등산회를 조직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정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이렇게 산에 오르는 것을 중단시킬 수 없다."라고 그는 말했다. 찬란한 봄날씨에 8백만 인구의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에서 김씨는 모자를 벗고 이제 기도의 시간을 갖자고 말했다. 김씨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기도를 하는 동안 그의 추종자들은 모자를 벗고 머리를 숙여 묵도했다. 전 신민당 총무 황낙주 씨, 폐간된 당보(黨報)의 주간이던 문부식 씨를 포함한 이 그룹은 따뜻한 계곡을 내려갔다. 사람들은 버너에 불을 피우고 독한 소주병을 따고 상추에 불고기를 싸서 먹었다. 좌정하고 있는 각자에게 새로 작사된 당가(黨歌)가 적힌 종이쪽지가 분배되었다. 사람들은 짧은 4행의 문구를 익혔다. 그들은 일어서서 원을 그려 늘어섰다. 두 사람의 리더가 가운데로 나갔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씨의 한 보좌역의 번역에 따르면 노래의 가사는 이랬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와 같고/ 전통의 신민당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그들은 각 소절을 노래했다. 다섯 소절의 합창은 화강암의 석판 위로 울려 퍼졌다. 다른 등산객들이 숲속에서 호기심으로 응시했다. 수감되어 있는 김대중 씨와 함께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인의 한 사람인 김씨는 배낭을 지고 다시 출발했다. 남녀 등산객들이 올라오면서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와 악수를 하면서 그의 건강을 빌었다. 지금 방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정권에 의해서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신문들은 나의 이름이나 사진을 싣지 못하며 나는 공개적인 집회를 가질 수 없다. 이러한 것들이 엄격히 규제되어 있다. 나는 나의 견해를 표명할 기회가 없음이 명백하다. 그들의 희망은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극히 위험한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엄청난 불안요소가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치적 상황과 정세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하여 거짓말, 거짓말만을 하고 있다." 라고 그는 말했다. "공식적으로 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당한 사람이지만 미국인들에게 이 말만은 하고 싶다. 즉 이 나라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은 민주주의다. 그래야만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등산이 끝날 무렵 산길 밑의 숲속에서 3명의 남자가 지켜서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배낭을 메고 등산복을 입고 있었다. "저기 그들이 우리를 기다리면서 감시하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그들 기관원들은 언덕을 돌아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우리의 산행은 연대감을 넓히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이구나 싶었다. 그것 말고는 나는 산의 교훈을 깨달았다. 언젠가 산에 오르면서 나는 동지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