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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산악회 활동을 시작


민주산악회 활동을 시작


    얘기가 잠시 앞질렀지만 내가 연금에서 풀린 것이 꼭 1년 만이었다.

    나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 규제법은 무시하기로 했지만 지장이 적잖았다. 우선 동지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고 모임을 주선해도 참석률이 낮았다. 상당히 공을 들여 40명을 점심에 초대했는데 이민우, 김명윤, 황낙주, 홍영기, 김동영, 최형우, 윤혁표 씨만 나왔다.

    내가 맨 먼저 조직한 것이 민주산악회다.모임이 잘 안 돼 답답해하고 있는데 김동영 씨와 정채권 목사 두 분이 찾아와 등산을 권해 함께 산에 올랐다. 생전 처음 산에 올랐는데 단번에 매료되었다. 모임에 안나오는 사람들을 등산에 초대한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등산 동지가 늘어나는 데 힘을 얻어 1981년 6월 9일에 민주산악회를 조직하고 매주 목요일을 산행(山行)의 날로 했다. 산악회가 조직을 넓혀 나가자 당국이 손길을 뻗쳤다. 전직 의원들에게는 정치 규제법에서 풀리고 싶거든 민주산악회에 가지 말라고 했고, 취직, 민한당 입당 등 사람에 따라 협박을 하고 회유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회원은 더 늘고 지방에서도 호응해 왔다. 그 무렵 산악회 활동은 <뉴욕 타임즈>에서 자세하게 보도됐다. '정치 활동이 금지된 한국 정치인은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다'는 제하의 이 보도는 헨리 스코트 스토크스 동경 지국장이 나의 산행에 온종일 동행해서 쓴 글인데 당시의 우리를 잘 묘사했다.

    - 정치 활동이 금지된 김영삼 씨는 정부 당국의 명백한 도전 속에 산산이 부서져 있는 그의 신민당을 재조직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신민당을 부활시키려는 김씨는 어려운 과업에 직면해 있다. 김 씨는 5백 명을 넘는 사람이 권력자의 분별없는 생각으로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것을 정상일 수 없지 않는가고 말하면서 민주화는 규제의 해제와 정치범의 석방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그는 민주산악회로 조직을 재건하고 있다.목요일 아침에 대원들이 모이면 옛날 3색의 신민당기에 민주산악회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등정을 시작한다. 목표지에 닿으면 산행식이 거행된다. 애국가 봉창에 이어 산악회 헌장이 낭독된다. "우리는 아름답고 장엄한 조국의 산하를 사랑한다. 이 산하 위에 정의롭고 참된 사회와 자유 민주가 꽃피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물러설 수 없는 염원이며 사명이다 …." 이어 기도의 순이다."억압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국민들 편에 서서 험난한 산행을 시작한 우리를 지켜 주소서. 저희들 마음 속에 자유의 강이 흐르게 하시고 신념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시고 이 산하에 민주화를 부르짖는 메아리가 그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