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산행이나마 할 수 있었던 자유도 오래 가지 않았다. 1982년 5월 31일 경찰이 집을 포위하는 2차 연금이 시작되었다. 재연금의 이유는 잘 모르지만 여러가지 일들이 겹친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아마 직접적인 빌미는 <뉴욕 타임즈> 회견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장영자 사건으로 어수선하던 때인데 나는 이같은 부정 부패는 정권의 성격상 필연적인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정치범의 석방, 광주 사태의 공식적인 조사, 언론 자유의 회복,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했다. <뉴욕 타임즈>는 나의 주장을 보도하면서 김영삼 씨는 인터뷰나 연설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외국 기자들은 접촉하면서 정치 활동 금지를 부정하고 있으며 그가 인터뷰한 외국 신문의 기사들은 지지자들과 학생들에 의해 복사된 번역물이 되어 비밀리에 지하에서 널리 배포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민주산악회에서나 종교 집회에 나가 설교라는 이름으로 연설도 했고 규제자의 시국 선언도 준비해 서명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아마 이런 일들이 다시 연금당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