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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사의 연금 통보


계엄사의 연금 통보


    19일도 당 간부들과 회의를 갖고 정부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계엄군이 우리를 철저하게 차단했다. 나는 20일 다시 기자 회견을 하기로 하고 각 언론사에 연락했다. 19일 저녁 광주 사태가 단편적으로 전해졌다. 밤새 광주 사태를 확인하려 했으나 소식은 모두 단편적이어서 정확한 진상을 알 수 없었다. 공수 부대가 투입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부 마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난폭한 진압 작전을 하고 있으리라는 건 짐작되었지만 시민의 피해 상황이나 희생은 확인할 수 없었다.기자 회견이 예정된 20일 아침 8시 헌병들이 우리 집을 에워쌌다. 2개 중대 병력이라고 했다. 나는 회견 예정 시간인 9시에 앞서 미리 들어와 있던 기자들만을 상대로 기자 회견을 했다.

    5.17 사태는 민주 회복이라는 국민적 목표를 배신한 폭거라는 규정에서 시작해 양심이 가리키는 바에 따라 위기를 딛고 나라를 건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말로 끝맺은 회견문을 읽은 뒤 미처 들어오지 못한 기자들을 위해 이 회견문을 배포했다.이 날은 합법적으로 국회를 소집 공고한 날이기도 했다. 나는 회견을 끝낸 뒤 국회로 가 신민당 의원 전원과 함께 의사당 농성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나는 황낙주 원내 총무에게 내가 가든 못 가든 의사당에서 총회를 열라고 지시해 두고 있었다.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어느 것도 빛을 보지 못했다. 회견문은 검열에 걸려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나의 지시에 따라 의사당으로 간 황 총무 등 우리 당 소속 의원들은 의사당 정문에서 계엄군에 저지 당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는데 너희들이 왜 막느냐고 했지만 상부 명령이라는 단 한 마디로 총칼을 의원들 앞에 들이댔다.

    이 시간 나의 연금도 시작되었다.계엄군 배치를 끝낸 뒤 책임자가 집으로 들어와 나를 연금한다는 계엄사령부의 지시를 통보했다.군인들은 이 시간부터 가족 이외의 출입은 금한다면서 현재 들어와 있는 기자, 비서, 당원, 친척까지도 모두 즉시 나가라고 요구했다.의사당 진입에 실패한 신민당 소속 의원들은 의원회관 식당에 모여 의원 총회를 열고 총재인 내가 오기를 한참을 기다리다 전화로 나의 연금을 확인했다.내가 있어도 별수 없었겠지만 의원 총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신민당은 나와 함께 상도동의 내 집에 연금당하고 만 것이었다.견딜 수 없는 고통이고 분노였다. 나는 5월 23일 광주사태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만들어 밖으로 내보냈다.

    무모한 5.17 폭거가 엄청난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다. 광주 일대에서 발생한 비참한 유혈 충돌은 나라의 앞날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과도 정부는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하고 책임을 지는 일연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모든 것을 5.17 이전으로 원상 회복해야 한다. 비상 계엄령을 해제하고 군은 국토방위라는 본래의 임무에 전념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런 요지의 성명을 국내 언론사와 외신 기자들에게 배포했는데 국내에선 햇빛을 보지 못하고 외신에만 보도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