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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사태로 민주화 역류


5.17 사태로 민주화 역류


    민주화가 역류한 것이 1980년 5.17 사태다.

    5월 17일은 조용했다. 학생들도 거리의 진출을 중지하고 대책 회의를 한다고들 했다. 긴박하던 정세가 약간 완화되는 듯해 여러날 만에 긴장을 다소 풀 수 있었다.그래도 일정에 쫓기다 늦은 저녁 식사 약속을 끝내고 11시가 가까워서야 집에 들어왔다.얼마 안 돼 당직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계엄 당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으니 일단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김대중 씨가 연행되고 김종필 총재도 연행당한 것이 틀림없다면서 총재님도 일단 피하십시오 라고 권했다. 모든 당직자들의 말이 한결같았다."무슨 소리요. 피하기는 왜 피해. 체포하겠다면 당하는 것이고 당당하게 대처하겠소. 내 걱정은 마시오."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일 아침 긴급 정무회의를 소집한다고 결정했다.내게 아무 일이 없으면 내가 주재할 것이고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정무회의가 신속하게 사태에 대처하도록 일렀다. 얼마쯤 지나니까 몇몇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내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좀 놀라고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5.17 계엄 확대라지만 계엄에 포함되지 않았던 제주지역을 대상에 추가한 것뿐이다. 서울의 계엄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데 계엄 당국은 계엄군과 탱크를 시내 요소에 진주시켜 배치했다. 국회와 정당 사무실이 계엄군 통제 아래 들어가 있었다.18일 아침의 신민당 긴급 정무회의는 김대중 씨를 비롯해 이유없이 연행당한 사람들의 석방과 서울 시내에 진주한 계엄군의 즉시 철수 그리고 국회와 신민당 등에 배치되어 정치활동을 방해하는 계엄 당국의 월권 행위를 즉시 중단하도록 결의했다. 정무회의 대표단을 구성, 결의 사항은 총리를 면담해 전달하도록 이르고 나는 윤보선 함석헌 유진오 씨 등 원로들을 찾아가 사태 수습책을 협의하고 원로들도 위난에 처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부탁했다.

    동분서주했지만, 계엄 당국의 검열로 신민당이나 나의 활동이 신문 방송에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으니 투쟁할 방책이 막연했다. 그래도 외신이 있고 조직을 통해 유인물을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계속해서 회의도 하고 회견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후 늦게 계엄군의 대령 한 명이 나의 집을 찾아 왔다.군은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것이니 기자 회견 같은 것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이 말을 총재님께 전달하라 해서 왔다고 했다. 나는 계엄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다고 말해 주었다."지금 당신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소. 안정은 당신들이 깨뜨린 것이지 학생들이 깨뜨린 것이 아니오. 그리고 기자 회견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오. 그렇게 전하시오." 라고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