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권력의 공백, 보안사가 메워


권력의 공백, 보안사가 메워


    5.17 사태는 정치와 정치인의 평가를 떨어뜨렸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리던 민주화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유신 체제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정치를 후퇴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정치권의 실패였다.나나 김대중 씨, 김종필 씨에게 5.17은 큰 상처가 되었다. 기회를 잃었다거나 감옥에 갇히고 연금당한 것보다 훨씬 큰 손실은 국민으로부터 받고 있던 기대와 희망을 손상당한 점이었다.나중 얘기지만 세 사람 모두가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은 1980년 봄을 낙관한 나머지 대비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대비가 미흡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낙관했다는 말은 결코 정확한 것이 아니다.

    1980년 봄을 민주화의 봄이라고들 했지만 10.26이라는 총격 사건의 결과로 민주화가 열렸다는 것이 많은 어려운 상황과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어렵다는 것 중의 하나는 갑작스럽게 온 권력의 공백이다. 권력이 박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가고 없게 되자 권력의 공백 상태가 생겼다. 권력이란 단 한 시도 공백 상태가 있을 수 없다. 공백은 계엄 선포와 함께 자동적으로 군부가 메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민간 정부의 군부 통제 기능이 약화된 점이었다.

    군부는 박 대통령 정권의 기둥이고 박 대통령만이 통제해 왔기 때문에 내각의 군부 통제 기능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권력을 집행해 온 중심 기관, 즉 정권 안보를 담당해 온 중심 기관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그리고 정보부가 권능을 잃어버린 것도 더욱 상황을 나쁘게 했다.대통령 권한을 인수한 최규하 대행이 외교관 출신으로 행정부와 정당 쪽에 기반이 없었다는 것도 큰 약점이었다. 계엄 군부 중에서도 보안사령부의 권한이 갑자기 커진 것도 위험 요소가 되었다.

    원래 권력에 공백이 생기거나 과도기는 질서를 유지하는 공안 기관의 기능이 크게 강화된다. 그런데 계엄령 발동과 함께 보안사령부는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는 계엄법에 근거해 모든 수사 기관을 통제하는 합동수사본부의 지휘부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보안사령부는 10.26 사건을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 비서실, 경호실 그리고 중앙정보부까지 접수해 갔다. 갑자기 보안사령부가 막강한 권력 기구로 등장한 것이다.

    그때 나는 군부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나름대로 알아 보았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정치적 야심이 없는 순수한 군인이라는 평이었다. 그 사람은 군대를 가지고 정권을 빼앗기 위해 나설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과도정부 운영을 봐도 참모총장이 대통령을 존중하고 있고 국방장관도 참모총장의 도움을 받아 군을 잘 다스리고 있었다.그런데 12.12 사태가 상황을 더욱 나쁘게 했다. 12.12 사태에 대해서는 상당한 우려를 했다. 보안사령관이 군부 실권자가 된 것은 대단히 염려스러운 사태였다.

    그렇지만 12.12 사태가 보안사령관의 쿠데타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국방부의 발표대로 정승화 총장이 10.26 사건과 관련해 의심스런 점이 있어 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체포한 것으로 알았다. 대통령의 재가는 없었고 도리어 대통령을 협박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어쨌거나 대행이 아니고 보궐선거로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군 통수권을 보안사령관에게 뺏긴 상태라는 것은 상상조차 안했다.

    그래도 보안사령관이 군부의 실권자가 되어 있다는 것은 염려스러운 현상이었다. 3월부터 5월에 이르는 기간 좋지 않은 징조들이 많이 나타났다. 나는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부를 제어할 길은 계엄을 해제하는 길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황낙주 총무에게 국회를 열도록 교섭하라고 했는데 공화당이 반대한다고 했다. 당시 공화당은 정풍 운동이니 뭐니 해서 어수선했기 때문에 국회를 열지 않으려고 했다. 계엄 해제도 반대했다. 개헌 특위에서 개헌안이 성사되면 그때 열자는 것이었다.가까스로 5월 20일에 국회를 열어 계엄 해제 결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를 하기로 여 야 간에 합의했다는 것을 군부가 알고 국회 개회 전에 먼저 일을 일으켜 버렸다. 그때 군에 불안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야당인 신민당 총재가 할 수 있는 일은 국회를 열어 계엄을 해제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5.17 사태는 정치의 진행을 막았다. 그리고 이 사태는 참으로 오랜 기간 정치에 큰 부담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