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 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것이 정치 일정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최 대통령은 공식 회담에서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말을 하는 듯했다. 나는 최 대통령 정부의 현황과 입장 그리고 장래 구상이나 애로에 대해 보다 솔직한 얘기를 듣고 자유스럽게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갖기 위해 자유스런 장소에서 만날 것을 제의했다. 최 대통령도 나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랬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면담 직전 최 대통령이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1980년 민주화에 실패한 책임이 최 대통령이나 여당에 있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가령, 여당 세력이 정부 따로 공화당 따로라는 식이라면 야당도 하나로 합쳐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 1980년 민주화에 실패한 것은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가 도리어 질서를 파괴했고 민간 정치인은 권력 경쟁을 하느라 분산되어 정치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특히 5.17은 불가피했다고 말하려는 사람들은 민간 정치인과 정당 그리고 학생들에게서 구실을 찾았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견해다.학생들이 정치문제를 들고 거리에 나온 것은 1980년 5월부터다. 10.26에서 4월까지 반년 이상 학생들은 정치 문제를 들고 거리로 나오거나 집단 행동을 하는 일은 없었다. 학생들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안개 정국이다. 정치 일정을 밝히지 않고 국회에서 여.야당이 직선제 개헌안을 순조롭게 만들어가고 있는데도 정부가 딴전을 벌이니까 과도 정부의 민주화 의지를 의심하게 되었다.정확히 말하면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기 위해 안개 정국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 도리어 정확하다.
정치인이나 정당간의 경쟁 역시 혼란과는 상관이 없었다.공화당과 신민당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정당은 국회에서 헌법 심의를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고 다른 중요 문제도 대화로 풀어가고 있었다.가장 정상적인 여.야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다만 당내에 문제들이 있었다. 공화당은 정풍 운동으로 심각한 분란을 겪었다. 당시 정풍 운동에 대해 여러 갈래 소문들이 있었다. 다는 아닐지라도 어떤 의도를 헤아릴 수 있는 소동이 있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는 공화당이 한번은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의 진통이고, 그것이 정치 일정에 영향을 줄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