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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 세력 부재로 정국 혼란 야기


중심 세력 부재로 정국 혼란 야기


    1980년 2월 사면 복권도 실현되고 개헌도 대통령 직선제로 방향을 잡게 된 정치의 자유화를 서울의 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울의 봄을 당시의 신문들은 안개 정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개헌을 하고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선거 일정을 확정해 실행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불확실하다 해서 신문들이 안개 정국이라고 이름붙였다.

    정치 일선에서 여 야당은 연내에 새 정부 수립을 목표로 했다. 국회 헌법심의 특위는 5월 말까지 개헌안을 확정하고 6월 중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일정을 짜놓고 있었다. 정부가 국회의 일정에 따르기만 하면 8월까지 새 헌법을 확정하고 연내에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모두 할 수 있었다.그런데 최규하 정부는 국회의 정치 일정에 따를 생각을 안했다. 정부는 정치 일정을 1년 6개월에서 2년 사이로 잡고 있었다.

    헌법도 정부에 별도로 헌법 심의기구를 구성해 대통령의 헌법 발의권을 행사할 준비를 했다. 정부가 정치 일정을 늦춰 잡고 국회와 대립하면서 민주화를 어둡게 하는 여러 조짐들이 나타났다.계엄 군부는 군부가 집권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특정인에 대한 완강한 거부 의사를 계속해서 내보냈다.최규하 정부의 이원집정부제 헌법 구상과 신당설도 세상 민심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원집정부제란 안보와 내정을 분리해 대통령은 외교 안보만 맡고, 내정은 총리가 전담한다는 것인데 최 대통령은 군부 실세를 배경으로 안보 대통령으로 남을 생각이며 이런 정치 구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 등 소위 유신 세력이 주축이 되는 신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이런저런 소문들이 많았지만 모두가 현실성이 없는 정치 구상이었다.예를 들어 이원집정부제라는 생소한 헌법을 여 야당이나 국민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더욱이 유신 잔당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이런 헌법을 만든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소문은 혼란의 원인이 되었다. 민주화로 가는 과도기에 가장 경계해야 하는 일은 혼란이다. 흐름을 되돌려 놓을 비상 사태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혼란은 구실이 된다. 그런데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일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민주화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1980년 상황은 이것이 어려웠다. 가장 곤란한 점은 과도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세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우리 신민당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것은 강력한 힘이기는 했지만 권력의 실체는 아니었다. 여전히 유신 헌법 아래 있었으며, 유신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었고, 신민당은 소수 야당이었다.최규하 대통령은 과도 정부를 이끌고 있었지만 유신 세력의 중심도 아니었으며, 대통령의 실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행사하지도 못했다.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 역시 여당 세력의 구심점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김종필 씨가 여당을 대표하고 있었고, 여당권의 유일한 대통령 후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