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하 대통령은 1979년 12월 6일 보궐선거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1년 안에 헌법 개정을 실현하고 그 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를 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상당히 느슨한 정치 일정이었는데, 나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단지 공화당과 신민당 사이에는 정치 일정을 앞당긴다는 합의가 있었다.김종필 총재나 나나 정치일정을 늦출 이유도 없었고, 다른 사람이 늦출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그때 다수당인 공화당도 국민 여론을 존중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기로 해 여 야 간에 헌법에 대한 대립이 없고, 국회에 헌법심의 특별위원회도 구성했고, 국회가 개헌안 통과만 앞당기면 정치 일정은 그에 따라 앞당겨지게 되어 있었다.
그랬는데 일이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최규하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12월 8일 긴급 조치 구호를 해제하는 0시를 기해 정치 관계 구속자들도 모두 석방하면서 복권만은 유보했다.나는 이미 긴급조치 해제와 사면 복권을 동시에 하도록 요구하고 있었고, 공화당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최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뒤이어 더 나쁜 상황, 즉 군부 질서를 흔들어 놓은 12.12 사태가 일어났다.
내가 최규하 대통령과 만나 시국 전반에 관해 논의한 것이 2월 18일이다. 이 회담에서 김대중 씨의 사면 복권 문제는 손쉽게 해결되었다. 최 대통령 말은 사면 복권 대상자가 많아 그 심사에 시간이 걸려 늦어진다면서 열흘 안에 사면 복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최 대통령은 정부가 헌법제정 심의회를 3월 초에 구성하고 4월 중 개헌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무슨 말을 하는가. 국회의 개헌안 심의가 지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국회의 개헌안을 국민 투표에 부치는 투표 관리만을 해야 한다. 정부가 개헌안을 만드느니 하고 나서게 되면 정치 일정을 늦추고 혼란을 불러오게 될 뿐이라고 내가 단호하게 반대했다. 최 대통령은 꼭 국회와 대립하는 정부 개헌안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알맞는 헌법안에 대한 연구의 의미도 있는 것이라고 했지만 석연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