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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실체는 계엄 군부


권력의 실체는 계엄 군부


    박 대통령의 장례도 끝나고 최규하 과도 정부가 자리를 잡은 뒤 나는 최규하 대통령 대행을 만나 과도 기간을 3개월 안에 끝내도록 제안했다. 내가 3개월을 제시한 것은 유신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3개월 내에 남은 임기를 채울 대통령 보궐선거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당시 헌법은 약 3천여 명으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어 이 헌법대로라면 3개월이 아니라 한 달 안에도 대통령 보궐선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대통령 선거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나는 최규하 대행에게 국민들이 유신 헌법 중에서 특히 반대한 조항이 대통령 직선제를 없앤 대목이다. 그런데 이런 유신 헌법 조항으로 대통령 보궐선거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유신 헌법에 의한 새로운 대통령 선거 시한 전에 과도 기간을 끝내자고 했다.

    4.19 후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따라 선거를 실시해 새 정부를 만드는 일을 3개월 안에 해냈다는 전례를 내가 상기시켰다. 그때 허 정 과도 정부는 3개월의 과도 정부로 훌륭하게 과업을 마쳤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라 3개월 내의 새정부 구상이 어렵다면 3개월 안에 개헌만이라도 해서 유신 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는 하지 말자고 내가 강력히 요구했다.최 대통령 대행은 그러자고 했다. 3개월 안에 과도 정부의 역할을 모두 마칠 수 있을지는 대답하기 어렵지만 자기로서는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역할을 끝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3개월 안에 개헌을 하고 새 정부를 구성하기에는 당시의 권력 중심부가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 우선 최규하 대행은 법에 따라 대통령 대행이 되기는 했지만 집권 세력 안에 기반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김종필 씨도 공화당을 가까스로 맡기는 했지만 행정부에는 힘이 미치지 않았다. 더욱이 유신 정권의 중심 세력이던 군부는 김종필 씨와는 멀어져 있었다.

    유신 정권 하에서 권력의 중심은 청와대 비서실과 정보부 그리고 대통령 경호실이었다. 그런데 이 세 기관의 책임자가 모두 10.26 사건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세 기구 기능이 정지되었다. 이렇게 권력의 중심이 텅 비게 되자 계엄 군부가 이 자리를 메웠다. 그때 권력의 중심은 계엄 군부였다. 그리고 군부에 접근할 수 있었던 내각과 공화당 내 반김종필 계열의 사람들은 군부의 도움을 얻어 일단 최규하 대행을 대통령으로 올려놓은 뒤 시간 여유를 가지고 후일을 구상하기로 했다.그들은 김종필 씨가 공화당을 맡도록 돕는 대신 김종필 씨는 최규하 대통령 대행이 보궐선거로 대통령이 되는 것을 양해하라고 했고, 김종필 씨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한테서 대통령 보궐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는 통보를 받고 나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비록 유신 체제는 무너졌다 해도 신민당만으로 개헌을 밀어붙일 힘은 없었다. 더욱이 그때 나로서는 사면 복권을 기다리고 있는 김대중 씨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내가 막무가내로 개헌과 새 정부 수립만을 서두르게 되면 야당이나 재야권에서까지도 야당 내 경쟁자가 될 김대중 씨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형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