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태는 사실상 유신체제의 종말을 고하게 한 사건이었다. 10.26 사태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10.26 사태 이후 그 누구도 유신체제의 존속이나 그 정당성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말하자면 유신체제는 청산되어져야 할 체제로서, 보이지 않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그 이전부터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10.26 사태는 국민적 합의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가 10.26 사태로 귀결되어 나타난 것이다. 10.26 사태는 많은 교훈을 남겼고, 한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는 장(章)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또한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체포와 투옥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양심과 정의의 목소리를 높였던 지식인, 종교인, 노동자, 농민, 학생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였다. 그들이 보인 진실을 위한 용기는 거룩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양심과 정의 때문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자청했던 것이다. 나는 그분들이 70년대에 보여준 용기와 고난에 찬 감옥으로의 행진에 대하여 경의(敬意)가 앞섬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있는 행동은 정치인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10.26 사태 후 민주적 정치역량의 집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국민혁명이라 할 10.26 사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역량의 단결이 시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10.26의 성과를 정치현실 속에서 구체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10.26 사태 이전의 반독재 민주구국의 투쟁은 양적으로 크고, 또 고난에 찬 것이면서, 산발적인 것이었음에 비추어, 그러한 산발적인 역량의 총체화야말로 시급한과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구심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역량을 전체로 보면, 저항적인 역량으로서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정국의 주도역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는 이제까지의 민주역량 가운데는 민주적 정치상황의 구축에는 적극적이지만, 구체적인 정치활동이나 정국 주도에는 초연한 입장에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국주도의 구심점 구축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그에 맞추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민당이 그 구심점이 된다는 점에 있어 많은 결함이 있는 것 또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달리 대안(代案)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구심의 형성과 전체 민주역량의 결집을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민당이 그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강조하지 않았다. 그때 시시각각으로 민주에 대한 반대역량은 자기집결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되었건, 민주역량이 단결하여, 민주화를 향한 통일된 전략을 수립하였다면, 민주화를 조속히 완결할 수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쉽게 민중적 좌절을 맛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