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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순리 - 2


역사의 순리 - 2


    나는 '80년대초 민중의 이러한 희망의 시기에 신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順理)라는 말을 한 바 있다. 나의 이러한 발언과 관련하여 찬반의 얘기들이 많았던 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혹자는 신민당이 무엇을 했기에 신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라고 감히 말하느냐고 반문했을지 모른다. 혹자는 너무도 성급한 것이 아니었느냐고 질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나 자신의 발언과 관련하여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어떤 질책이나 반론도 충분한 이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우정어린 충고라는 것도 믿고 싶다.그러나 내가 신민당의 집권이 역사의 순리라고 감히 말한 데는 나름대로 깊은 사색과 고뇌를 거친 것임을 고백하고자 한다.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10.26 사태는 사실상 유신체제의 종말을 고하게 한 사건이었다. 10.26 사태의 주인공이 누구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10.26 사태 이후 그 누구도 유신체제의 존속이나 그 정당성을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말하자면 유신체제는 청산되어져야 할 체제로서, 보이지 않는 국민적 합의가 이미 그 이전부터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10.26 사태는 국민적 합의의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국민적 합의가 10.26 사태로 귀결되어 나타난 것이다. 10.26 사태는 많은 교훈을 남겼고, 한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는 장(章)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또한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다. 그동안 체포와 투옥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양심과 정의의 목소리를 높였던 지식인, 종교인, 노동자, 농민, 학생들의 눈물겨운 투쟁의 결과였다. 그들이 보인 진실을 위한 용기는 거룩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양심과 정의 때문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고통을 자청했던 것이다. 나는 그분들이 70년대에 보여준 용기와 고난에 찬 감옥으로의 행진에 대하여 경의(敬意)가 앞섬을 고백치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있는 행동은 정치인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10.26 사태 후 민주적 정치역량의 집결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국민혁명이라 할 10.26 사태를 다시 원점으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역량의 단결이 시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10.26의 성과를 정치현실 속에서 구체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10.26 사태 이전의 반독재 민주구국의 투쟁은 양적으로 크고, 또 고난에 찬 것이면서, 산발적인 것이었음에 비추어, 그러한 산발적인 역량의 총체화야말로 시급한과제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구심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역량을 전체로 보면, 저항적인 역량으로서는 엄청난 것이었지만 정국의 주도역량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는 이제까지의 민주역량 가운데는 민주적 정치상황의 구축에는 적극적이지만, 구체적인 정치활동이나 정국 주도에는 초연한 입장에 있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국주도의 구심점 구축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그에 맞추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민당이 그 구심점이 된다는 점에 있어 많은 결함이 있는 것 또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달리 대안(代案)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구심의 형성과 전체 민주역량의 결집을 늦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신민당이 그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강조하지 않았다. 그때 시시각각으로 민주에 대한 반대역량은 자기집결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 것이 되었건, 민주역량이 단결하여, 민주화를 향한 통일된 전략을 수립하였다면, 민주화를 조속히 완결할 수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쉽게 민중적 좌절을 맛보지는 않았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