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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순리 - 1


역사의 순리 - 1


    1980년이라고 하면 한국 민중에게 있어 희망의 연대였으며, 동시에 좌절의 연대이기도 하다. 희망의 연대라 함은 1979년의 10월 26일을 분수령으로 하여 억압과 비민주의 장벽이 걷히고, 새로운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조국 건설에의 희망에 부풀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민중의 마음속에는 이제 숨 좀 쉬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오겠지 하는 보이지 않는 전망이 있었다. 이제 말을 하는데 앞뒤를 휘돌아보지 않고도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오고 있다는 기대가 넘쳐흘렀다. 당시의 정국을 안개정국이라 일컫기는 했으나, 그 안개는 마침내 걷힐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개는 태양의 빛이 강렬하면 마침내 걷힐 것이기 때문이다.

    '80년이 좌절의 시기인 것은, 그와 같은 희망과 기대가 무너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너무도 오랜 동안 기다려온 희망이었기에 그 좌절의 의미도 컸다. 너무도 고통스럽게 견뎌온 세월이었기에, 기대가 무너진 뒤의 참담함도 컸던 것이다. '80년의 봄은 희망이었으나 여름은 죽음이었다. 한해 동안에 이렇게 엄청난 희망과 좌절이 한꺼번에 닥친 일은 일찍이 역사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민중에게 있어 희망과 좌절의 의미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비록 보잘 것 없으나, 역사에 참여할 수 있고, 발언할 수 있으며 나와 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데서의 희망인 것이다. 내가 참여하고 발언하는 가운데서 오는 책임은 그것이 어떤 것이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창조할 수도, 그것에 대해 발언할 수도 없는 현실은 사실상 절망인 것이다. '80년 초 민중이 가졌던 희망의 구체적 내용은 내가 참여하고 내가 창조하는 새조국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상에 대한 기대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좌절이란 것은 그 희망이 무너진 상태를 말한다. 장내(場內)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부터 장외(場外)로 떨어지는 좌절이 한해 동안에 민중이 맛보아야 했던 역사였던 것이다.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가 보장되는 사회, 그리하여 민중이 그 자신의 운명의 주인공이 되는 사회야말로 하나님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사회요, 인류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될 것이다. 현실적인 정치제도로서는 그것을 실현하는 최선의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인간의 소외(疏外)를 극복하는, 인간이 창출한 제도 가운데 최선의 것이다.

    민주주의란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도 또한 민주적인 것이지 않으면 안된다. 설사 민주주의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민주적이 아닌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하여서 끝가지 민주적인 정권을 역사는 결코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 자체로서 이미 민주주의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까 말한 민중의 희망 속에는 자신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를 포함하는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자신을 통치할 정부를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이 포함되어 있음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