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체제는 개헌논의 자체를 봉쇄하였을 뿐만 아니라 개헌을 주장하거나 심지어 유신헌법의 잘못된 부분, 즉 반민주적인 부분과 성격을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긴급조치라는 철퇴를 들이댔다. 체제가 전면적인 개선 또는 제도보완의 국민적 요구에 개방적이고 유연한 대응능력을 가지지 못할 때에는 체제도전과 타파에의 요구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0.26사태는 체제경직성이 가야 할 운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교훈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 정권도 처음에는 개헌논의에 대해 경직된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이런 경직성으로부터 탈피한 것은 피차를 위해 고마운 일이다. 더욱이 현 정권은 그 초창기의 출범과정이 광주사태라는 민족사에서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역사적 참극과 직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집권 이후에 있어서의 엄청난 부정과 부패, 제도와 현실 면에서의 가혹한 억압조치, 언론통제와 탄압 등 유신시대를 능가하는 시행착오와 반민주적 작태를 시현하였다. 이 위에 현 정권이 끝내 체제수호를 위해 자신의 경직성을 고집한다면 전국민적 저항과 대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의 방향이 거꾸로 가지 않는 한 그 귀결은 명백하다 할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오는 것이 빠르고 늦고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민주적 개헌에의 합의와 그 개헌의 완결은 이러한 불행한 대치와 그 결말을 예방하는 하나의 안전판인 것이다. 평화적 개헌은 정통성과 정당성에 의심을 받으면서 출범한 현 정권의 안전한 퇴로를 열어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또한 광주사태의 평화적 치유와 극복을 위해서도 개헌은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민주화와 개헌에 대한 합의는 광주사태의 비극을 합심하여 치유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평화적 정권교체의 의지를 거듭거듭 천명한다 하더라도 현행 헌법체제로서는 결코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룰 수가 없다. 현재로선 평화적 정권교체로 이르는 통로가 막혀 있다. 있다면 오직 수직적인 이양과 승계만이 있을 뿐이다. 왕조체제의 세습이 변형된 형태로 존속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평화적 정권교체가 아니다.평화적 정권교체가 아니기 때문에 승계 받은 정권은 광주사태 등 이른바 제 5공화국 출범과정에 있어서의 정당성과 도덕성, 그리고 출범이후에 있어서의 비리와 부정에 대한 부담과 책임으로부터 면제될 수 없을 것이며, 국민적 저항에 원한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지난날의 상처와 비극과 그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평화적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도, 그리고 진정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개헌은 우리 세대에 있어서 제1의 과제이며 그에 합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