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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은 민주화요,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방향은 민주화요,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선거는 정치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의 소리이다. 2.12총선은 거기에 나타난 민의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정치문제를 해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평화적 주권행사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평화적으로 제시하는 국민의 마지막 통첩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과 귀결점은 민주화요, 그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총선 민의가 처음에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더니, 그 다음에는 왜곡과 굴절을 일삼던 끝에 마침내는 민의를 거역하는 것으로 현재까지 진행되어 왔다. 12대 국회 개원 초기에 논의되던 구속인사의 석방과 사면.복권 조치가 유야무야되어 버렸고, 오히려 역사상 일찍이 그 유례를 볼 수 없을 만큼의 정치범이 투옥되었다. 정치권력 자체에 반대하거나 또는 그 정책에 대하여 비판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구속사태가 야기된다면, 그 사람에게 어떠한 혐의와 죄목이 씌워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정치범일 수밖에 없다.한 사회에 정치범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정치적 안정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권력의 불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와같은 현상은 뜻있는 국민으로 하여금 오늘의 정치현실에 대하여, 그리고 과연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하여 불안감과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체제의 경직성은 일견 그 체제가 강고한 것처럼 보이게 할지 모르지만, 종국적으로는 그 체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 줄 뿐이다. 서슬이 시퍼렇던 유신체제(維新體制)가 10.26사태로 비극적 종말을 고하자'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조차 '유신철폐'에 한 줄의 이의도 달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물론 유신의 잔재와 그 기틀이 의연히 오늘에 심화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형적인 실체로서의 유신체제는 역사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 갔다. 유신체제의 시작과 종말, 그리고 그 경직성이 주는 교훈을 더 이상 반복해서 경험하지 않고자 한다면, 우리는 규격화된 체제로부터의 탈피가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나는 체제니 반체제니 하는 것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무릇 민주주의 사회라면, 규격화되고 고정화된 체제나 제도의 틀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개선과 보완을 거듭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반정부는 있을 수 있어도 반체제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체제가 고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도개선의 여백은 열려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 개선과 보완이 정치권력에 의하여 봉쇄되어 있다면, 정치권력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반체제인 것이지, 민주지향이 반체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현정권이 규격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진다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규격안에서 만끽하는 탐닉과 그 미몽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이 점을 호소해왔고, 또 앞으로도 나의 호소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은 규격의 두께를 더 두껍게 쌓아가려고 하고 있다. 나는 이 점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민주진영에서 정치범으로 간주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도시이주민 등 민생문제와 관련하여 투옥된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정책은 외형적 성장목표에만 집착해온 나머지 국민일반의 복지나 균형발전, 분배정의 실현문제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80년대는 정치적으로는 70년대의 위축에 대응하는 확산의 연대가 되어야 하고, 사회경제적으로는 방만한 외형적 성장으로부터 복지균형적인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