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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의 깊어가는 의심


한국민의 깊어가는 의심


    이렇게 평화에 대한 도전이 두 가지의 방향에서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한국에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길입니다.

    민주주의의 쟁취를 위해, 자유와 인권의 수호를 위해, 국민이 자신의 정부를 선택하고 그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으며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반대되는 정부를 갈아치울 수 있는 민주제도를 갖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국민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피나는 투쟁을 해왔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한때 그의 망명 생활중 이 대학교에서 수학(修學)한 나의 오랜 친구이자 민주투쟁의 동지인 김대중씨는 그가 자신의 조국인 한국에 있는 것조차 독재권력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입국이 오랫동안 거부되었습니다. 미국정부의 주선과 친지들의 도움으로 그의 입국이 실현된 이후에도 그는 재투옥의 위협과 정치 활동이 봉쇄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파괴, 유린하는 독재 집단을 미국 정부가 묵인 또는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한국 국민의 의심이 날로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문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한국 학생들에 의한 82년 3월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85년 4월의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의 한국 독재집단 지원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과 함께 참다운 한미 우호관계, 한미 양국이 공동의 이상으로 하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한국 국민도 향유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미국 정부 및 미국 국민과 더불어 도덕적 연대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소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접적인 행동의 계기는 공식발표로 191명이 죽고, 수천명이 부상당한 바 있는 1980년 5월의 광주사태 당시, 미국이 그의 작전 지휘권 관할하에 있는 한국군의 이동과 작전을 용인한 것으로 믿고 있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1982년 7월 2일자 [뉴욕 타임즈]지에서 커밍스 교수가 "폴란드의 자유노조 탄압을 어린애 장난같이 보이게 한 광주사태"로 표현한, 그 5월의 비극에 대한 민족적 울분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의 이러한 행동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민주주의적 동반자로서 한국 국민의 눈에 비쳐지기보다는 독재권력의 지원자로 비쳐지고 있는 데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국민도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정권유지를 위한 '억압의 구조'속에 미국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은 미국을 위해서나 한미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그 한계는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학생들의 행동 속에 내재해 있는 한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적인 한미 우호, 동반관계에 간절한 호소를 저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 국민은 한국에서의 민주제도 확립에 미국이 협력적이냐, 아니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느냐 하는 확실한 답변을 듣고자 합니다. 독재정권에 대한 지원은 35년전 한국 전쟁에서 한국과 미국의 젊은 병사들이 피로써 확인한 민주주의적 한미우호 선린관계를 파괴하는 행위로 한국 국민에게 규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어떠한 입장에 설 것이냐는 미국 정부와 국민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의 도덕적 책무가 소홀히 되거나 방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미국의 역할을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국 국민의 투쟁에 의해서 쟁취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과정에서 또 이룩된 이후에 있어서 미국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지 않게 되기를 다만 충고하고자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