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대회는 이철승 씨가 특혜를 받아 지은 마포당사에서 개최했는데 아침부터 2천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투표 때는 그들이 김영삼을 연호했다. 이철승 씨는 나치스가 의사당을 포위하는 식이냐고 했지만 우리 당 대의원들은 민주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가 그들이 연호하는 김영삼에 쏠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국민의 이같은 기대가 거대한 유신 권력의 벽을 넘어서서 내가 승리한 진짜 힘이었다. 이 날의 승리는 나의 승리가 아니라 위대한 민권의 승리였다.
한 작가의 방청기는 그날의 드라마를 실감있게 표현했다.내가 신민당 전당대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신민당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더구나 있을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신문에서 읽은 조직과 자금 대 바람이란 말뿐이었다 … (중략)
당헌 개정안 수정안이라는 매우 어려운 낱말을 놓고 40분이나 회의가 춤을 춘 다음 기껏 "민주주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말로 철회되었을 때 기자들이 "저건 장난이다" 하고 수군거리는 것에도 지체없이 수긍이 갔다."승자는 관용, 패자는 승복이지요."창 밖 을씨년스런 풍경의 공지에서 솟구쳐 오르는 열기를 끄듯 의사봉은 간헐적으로 딱딱이 소리를 내고, 나는 지리하고 숨막히는 관전에 지쳐 떨어져 복도로 나왔다. 복도에, 층층대에 바쁜 사람들이 이리 쏠리고 저리 몰리고 화장실도 출입을 통제하란다. 민생고를 핑계로 밀고 들어가자 화장실이란 장소에 잘 어울리는 말투의 난무 속이다.
"지랄 마! 난 못 가. 죽는 줄 뻔히 알면서 죽는 길로 난 못 가. 불러 와. 자긴 혼자 며칠 전부터 언약을 받았을 거야. 제기랄. 난 죽는 길로 못 가. 당신이 말해. 결정을 내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누군가 드디어 수도물도 나오지 않는 세면대에다 내리 코피를 쏟는다. 뭣같이 또 코피가 쏟아지네 하면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마침내 누구라고 선언하고 모두가 좋다고 소리치기 바쁘게 화장실은 휑뎅그렁한 빈방이 되어 버린다. 그들이 만약 반대 결의를 보았더라면 나중의 표차는 적어도 5표 이상 더 벌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