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김재규의 총재 후보 사퇴 권유


김재규의 총재 후보 사퇴 권유


    나는 지난해 4월부터 전국을 돌면서 이 나라의 민주 투쟁, 민권 투쟁이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우리는 12월의 총선거에서 승리했다. 12월의 선거는 국민이 공화당 정권을 불신임할 것이고, 신민당이 정신차려 수권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이다.12월의 선거가 신민당에 부여한 의미는 당을 개혁해서 민주 회복에 나서라는 것이다. 국민이 공화당 정권을 버렸으면 신민당도 공화당을 버려야 한다. 지금 신민당은 공화당 정권을 붙들고 있는데 이러면 신민당도 버려야 한다. 5월 대회를 앞둔 경쟁은 공화당 정권을 도우려는 단순한 세력과 정권에 도전해서 민주 회복을 실현하겠다는 양심세력간의 경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이 민주주의를 찾고 우리들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믿자.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약한 자가 일시적으로 이기는 경우가 있지만 종국에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믿자.나는 진심으로 일선 당원들에게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나를 반대했다. 4월 중순께로 기억되는데 청와대 출입 기자들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나를 비난했다.

    "김영삼 씨는 긴급 조치 위반 사례가 무려 7건이나 된다. 구속해야 할 것이지만 야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압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 그대로 두고 있다. 지금 총재 경쟁을 하고 있지만 김영삼 씨는 총재로 당선되어서도 안 되고 당선되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이렇게 나오니 소위 측근들이 나를 핍박하는 충성 경쟁을 했다. 정치 공작은 중앙정보부가 주관해 온 일인데 1979년의 신민당 전당대회 공작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까지 나서서 정보부와 경호실이 경쟁을 했다.5월 중순께 나는 김재규 정보부장과 만났다. 금녕 김씨 문중의 한 분이 '김재규 씨는 정보부장이라는 직책 때문이지 김 총재한테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만나는 것까지 거절하지 말라'고 권해서 롯데 호텔에서 만났다. 김 부장은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라는 말로 내가 금녕 김씨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잘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얘기했다. 그러더니 나더러 총재 후보를 사퇴하라고 권했다. "대통령 각하의 생각이 확고합니다. 김 총재도 생각해 보십시오. 정권에 도전하는 사람을 가만두겠습니까. 이것은 총재님을 위해서 제가 드리는 부탁입니다" 라고 그는 간곡히 말했다. 나는 "마음을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러나 그렇게는 못합니다. 야당까지도 마음대로 조종하는 정치와 싸우는 것이 내가 할 일이 아니겠소" 하고 거절했다.

    총재 경선을 감행하면 불을 보듯 뻔하다. 경쟁에 이기지도 못하고 떨어진 뒤에는 온갖 피해를 받게 되어 있다. 설혹 총재로 당선한다 해도 당을 끌고 가지 못할 것이다. 총재를 포기하고 모씨를 도와주면 우리가 총재님을 도울 수 있다. 이번 한 번만은 우리 도움을 받아들이고 다음 번을 기약하라고 그는 끈기있게 나를 설득하려 했다. 이대로 가면 자기가 나를 죽이는 일을 지휘해야 한다면서 "총재님, 제가 총재님을 해롭게 하는 일을 안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김재규 씨는 사람은 좋고 내게도 진실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만 좀 미련하다고 할 정도로 끈질긴 데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김 부장에게 "고맙다. 나한테 하는 말이 나를 회유하는 것이 아니고 김 부장의 진심인 줄을 알겠다. 그러나 김 부장의 권유는 나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유익한 것도 바른 일도 아니다."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