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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외 투쟁 병행


원내외 투쟁 병행


    나는 10.17 사태를 이렇게 규정하고 헌정이 중단된 계엄하에서 만들어진 유신헌법은 고쳐야 하며, 이를 위해 국회에 개헌 기초심의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나는 이 연설에서 개헌 특위 구성은 국회의 다른 일반 의안보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11월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사실상의 관선 대표들에 의한 대통령 간접 선거를 국민의 직접 선거로 되돌려 놓는 신민당의 개헌안도 작성해 발표했다.

    우리는 원내외 투쟁을 병행했다. 외골수로 밀고 가기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바깥에서 원군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종교계 학계 문화계 등 지식인들이 민주 회복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사회 각계의 시민운동을 앞장서서 이끌기라도 하듯이 일선 기자들이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내놓고 유신 권력의 언론 통제에 항의했다. 사회 각계의 민주화운동을 연합하는 민주 회복 국민회의도 1974년 연말에 결성을 보게 되었다. 신민당도 개헌추진 시도지부를 결성하고 현판식을 통해 지방 유세를 했다. 개헌 유세에서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광주에서 행한 개헌 현판식이다.

    나는 1972년 정초 광주 중앙교회에서 전국의 기독교 청년 학생들의 모임이 있던 때 여기 초청받아 기독교인의 정치참여란 연제로 연설한 일이 있는데 이때 정치 위기를 경고했었다. 내가 이런 경고를 한 것은 보위법 파동 직후였기 때문이다. 보위법 파동이란 정부가 1971년 12월 북한의 남침 위협이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 보위에 관한 비상 조치법을 강행 처리해서 일어났던 파동이다.

    나는 그때 보위법 파동에 대한 나의 견해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말한 요지는 이랬다.

    지금 박 정권은 북한이 남침할 위험이 높아졌다는 구실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비상 사태 선포라는 것이 법적 근거가 없다. 공화당은 필요할 때 비상 사태 선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국가보위법을 만들었다. 이 사태는 심상치 않은 불길한 징조다. 내가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는 것은 이 사태가 거짓말로 시작되고 있는 데 근거한다.정부는 북한의 남침 위협이 높아졌다고 말하는데 그럴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국제 정세도 그렇고 주한 미군과 미국의 확고한 방위 공약도 변화가 없고 북한 내부에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침 위협이 높아졌다고 판단할 새로운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비상 대권을 주는 국가보위법을 만들기 위해서다. 왜 이 시기에 대통령의 비상 대권을 준비하는 것인지 이 비상 대권을 어떤 일에 사용할 작정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경계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충 이런 요지였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10월 유신의 경고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광주에서 하던 개헌 현판식은 바로 보위법 파동 3년이 되는 때였다.나는 광주 연설에서 3년 전 중앙교회에서 학생들에게 했던 연설 내용을 되새기면서 이런 말을 했다.내가 3년 전 정부가 말하는 남침 위협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몇달 뒤에 정부 스스로가 이것을 확인했다. 정부는 그때 북한과 비밀 접촉을 하고 있었고 밀사를 주고받은 뒤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때 법에도 없는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를 발동해놓고 이것을 합법화하는 보위법을 제정했다.

    소위 10월 유신은 법에도 없는 국회 해산 등 조치를 한 뒤, 유신 헌법을 만들어 불법을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