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적인 것은 평화적 정권 교체의 길을 사실상 막아놓고 있는 유신헌법을 개정하는 일이었다.둘째는 계엄령 하에서 구속되어 복역중인 조윤형 등 10대 국회의 신민당 소속 의원을 비롯해 유신 체제에 희생당하고 있는 정치범의 석방이었다.세번째는 일본에서 납치되어 동교동 자택에 연금되어 있는 김대중 씨에게 그가 원하는 대로 해외에 나갈 자유를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이 세가지가 모두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였지만 어느 하나도 야당 총재가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유신 체제로 3권을 장악한 뒤 박 대통령은 헌법 논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긴급조치를 발동시켜 우리들 신민당의 개헌투쟁에 대한 사전 대비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긴급조치를 무시하고 고난의 투쟁을 강행군하는 것 뿐이었다.내가 개헌 투쟁에 나서리란 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정부도 긴장했고 매스컴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냈다. 신문 잡지들이 경쟁하듯 회견을 요청했다. 이것은 특별히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유신 헌법 반대 투쟁을 바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헌법 논의를 금지하는 긴급조치가 있어서 헌법관계의 내 발언은 쓰지 못하지만 우회적으로 나쁘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자연히 나도 신문의 그런 입장에 맞추어서 얘기를 했다.
"몇년 전에 아르헨티나에서 야당 당수를 하던 톨레 박사가 와서 하는 말이 자기네 당 사무실에는 자유가 있는 곳에 빵이 있고 빵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는 표어를 붙여 놓고 있다더라. 군사 독재하의 부패와 경제 파탄에 시달린 아르헨티나의 양심의 외침인데 이 말은 이제는 우리가 강조해야 할 형편이 되었다.나는 일찍이 정치 지표로 첫째 억압과 공포가 없는 정치, 둘째 지역과 계층 사이에 불균형이 없는 경제, 셋째 너와 나 사이에 불신이 없는 사회를 내걸었다. 이 길을 가는 데 첫번째 조건은 여 야의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정치제도다."
이 정도 발언이 그때 신문 잡지가 내 말 중에서 게재할 수 있는 한계선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어쨌든 나는 개헌투쟁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기자회견에서 정치 관계 명언(名言)을 조금 바꾸어 "야당을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받을 야당밖에 가지지 못한다"는 말로 우선 국민의 협조부터 구했다. 신민당이 개헌 강행군을 견디어 내고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신민당을 단결시키는 힘은 국민의 뒷받침뿐이고 또 이것을 위해서는 신민당의 힘을 유신 헌법 철폐에 집중해야 한다고 나는 판단했다.나는 9월 정기국회 대표연설을 개헌투쟁의 출발점으로 했다. 재작년 10월의 정변을 통해 박 정권은 성역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데다 지금은 긴급조치로 정권을 지탱하고 있다. 10월 사태는 명백한 정변이다. 개혁을 위한 정변이 아니라 정권 유지를 위한 헌정 유린이었고 전진을 위한 정변이 아니라 역사의 후퇴를 가져 온 정변이었다. 박 정권은 국가 안보의 명분을 내세워 정권 안보의 장치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