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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5


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5


    마태복음 27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혀 있다. "빌라도는 예수가 군중에게 끌려온 것이 그들의 시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빌라도가 재판을 하고 있을 때에 그의 아내가 전갈을 보내어 '당신은 그 무죄한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간밤에 저는 그 사람의 일로 꿈자리가 몹시 사나왔습니다'하고 당부하였다. 그동안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죽여달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총독이 '이 두사람 중에서 누구를 놓아달라는 말이냐'하고 묻자 그들은 '바라바요'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군중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주었다."

    한 재판관이 양심에 반대되는 판결을 하게 되는 과정과, 그런 판결로부터 도피하려는 과정이 성경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가 자신의 양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음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가 무죄(無罪)임을 알고 있었다. 군중 앞에서 손을 씻을 때의 빌라도의 심정은 어떠했을 것이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인가 하는 것은 문제로 남는다. 결국 바라바를 놓아주고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채찍질하게 하여 군중에게 내준 사람은 빌라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성경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법관이 처한 상황이 빌라도가 처한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도 유사한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빌라도의 행동이 그러했듯이 결국에 가서는 법관이 양심을 버리고, 권력의 요구에 따라 판결해주고 마는 일이 흔히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빌라도가 군중에게 돌리려 하였듯이 권력에게 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우리 나라의 법관들이 '손을 씻는 빌라도'에 대해 꼭 좀 읽는다면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감상(感想)이 착잡하리라고 생각한다.

    법관도 인간이며, 지식인이다. 왕왕이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양심에 반하여 권력에 굴복하거나, 권력과의 타협을 하면서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을 많은 사람이, 그리고 역사와 민족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것을 역사와 민족이 이해해줄 것으로 믿고 또 기대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하소연을 많이 들어왔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미워지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연 역사가 한 지식인의 그러한 내면적 갈등까지를 모두 다 이해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빌라도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지만,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서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는 데 역할을 한 중심인물, 또는 죽이는 일에 동참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나라의 대부분의 법관은 법의 정의와 인간의 양심을 수호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또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려 하고 있다는 것도 믿고 싶다. 우리 나라 사법부의 전통은 외견상 많이 후퇴한 것처럼 보이나, 자유당 시절이래 보이지 않게 흐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들이 양심적인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외부적 요인과 현실적 조건만을 개선한다면 우리 사법부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