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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4


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4


    한편, 법의 운영에 있어서도 일방통행적이었다. 무엇보다 유신 이후, 법관의 임면권(任免權)이 대통령에 있도록 함으로써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법을 판단하고, 형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사건에 있어서 권력의 눈치와 지시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게 하였던 것이다. 유신 직후 법관의 재임명(再任命)이 있었는데, 이때 재임명에서 탈락된 법관들은 그 대부분이 국가보상(國家補償)이나 배상판결에서 국가패소를 선고하거나,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여 권력의 비위에 벗어난 사람들이었으며, 이것은 법관이라는 자리를 권력에의 제도적 종속관계로 되게 하는 시범적 계기로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권력이 구체적으로 법관의 판결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심리에 간섭하였던 것이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에 있어서, 법관의 판결문은 검사의 공소장(公訴狀)을 그대로 베끼는 것으로 귀결되었으며, 그나마 양심적인 법관은 억지 논리로 판결문을 쓰기보다는 차라리 공소장을 베낌으로써 자신의 의견이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다는 고백과 술회를 하고 있었다.

    형사사건에 있어서 정치범의 경우, 재판 이전에 이미 그 결과가 나타나 있었고, 법관의 판결은 그것을 추인(追認)하는 요식행위(要式行爲)에 불과하였다. 유신기간 중, 변호사회(辯護士會)가 법관을 상대로 설문조사(設問調査)한 바에 의하면, 외부의 간섭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없었다는 대답이 조사대상의 절반을 넘고 있다는 보고는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더욱 가혹한 것은, 정치권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구속하고 기소한 사건에 있어서 법관이 그에 대한 양심적인 판결을 회피함으로써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된 이른바 사법살인(司法殺人)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억하고 있다. 법이, 그리고 법원이 인간의 권리와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인권의 유린과 존엄한 생명을 외면하는 판결을 함으로 해서, 국민이 기대해야 할 마지막 보루로서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아마도 사법부의 권위와 영예는 김병로(金炳魯) 대법원장이 불안한 법과 법원의 권위를 불안정한 몸매로 법과 정의를 지키던 그때 이후 계속 하강(下降)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언론은 그것을 지키고 키워야 할 언론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법의 권위는 그것을 지키고 키워야 할 법원과 그 구성원인 법관이 지키고 키워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법의 권위가 법관에 의하여 지켜지고 키워지는 것이 법원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 물론 보다 더 큰 책임이 정치권력에 있음은 재언(再言)을 요치 않는다. 그러나 법관이 그 법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다면, 법관들이 과연 떳떳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유신말기(維新末期) 신민당 총재인 나에 대한 직무정치 가처분결정에 대한 판결같은 것은 좋은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