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 있어서 정치범의 경우, 재판 이전에 이미 그 결과가 나타나 있었고, 법관의 판결은 그것을 추인(追認)하는 요식행위(要式行爲)에 불과하였다. 유신기간 중, 변호사회(辯護士會)가 법관을 상대로 설문조사(設問調査)한 바에 의하면, 외부의 간섭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없었다는 대답이 조사대상의 절반을 넘고 있다는 보고는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더욱 가혹한 것은, 정치권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구속하고 기소한 사건에 있어서 법관이 그에 대한 양심적인 판결을 회피함으로써 귀중한 생명을 잃게 된 이른바 사법살인(司法殺人)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기억하고 있다. 법이, 그리고 법원이 인간의 권리와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인권의 유린과 존엄한 생명을 외면하는 판결을 함으로 해서, 국민이 기대해야 할 마지막 보루로서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아마도 사법부의 권위와 영예는 김병로(金炳魯) 대법원장이 불안한 법과 법원의 권위를 불안정한 몸매로 법과 정의를 지키던 그때 이후 계속 하강(下降)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언론은 그것을 지키고 키워야 할 언론인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며, 법의 권위는 그것을 지키고 키워야 할 법원과 그 구성원인 법관이 지키고 키워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법의 권위가 법관에 의하여 지켜지고 키워지는 것이 법원 내부에서부터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 물론 보다 더 큰 책임이 정치권력에 있음은 재언(再言)을 요치 않는다. 그러나 법관이 그 법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다면, 법관들이 과연 떳떳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코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유신말기(維新末期) 신민당 총재인 나에 대한 직무정치 가처분결정에 대한 판결같은 것은 좋은 질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