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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3


법의 지배와 폭력의 지배 - 3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법을 지키라는 소리를 집권자로부터 자주 듣게 되었다. 법을 지키라는 것과 관련하여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법을 지키라는 소리는 국민이 해야 할 소리인데도 집권자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법이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키 위해 제정된 정의의 실현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거꾸로 집권자가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하여 법을 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이때 법은 정의가 아니라 불의(不義)인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우리는, 법체계가 국민의 편익(便益)의 방향에서가 아니라, 집권자의 편익에 따라 제정되고 있으며, 그러한 불의한 법의 제정이 가능하도록 입법기관과 입법과정이 집권자의 마음대로 좌우되고 있는 때임을 또한 알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과정에 앞서 집권자가 먼저 법을 어기는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집권자의 편익에 맞추어 입법이 가능할 수 있도록 되기 위해서는 집권자 자신이 기왕의 법 체계를 파괴하고 유린하는 과정을 겪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우리 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삼선(三選)이 헌법상으로 명백하게 금지되어 있는 것을, 저들 집권자들이 먼저 위반하였던 것이다. '72년의 유신정변은 개헌이라는 요식적 절차도 없이 강행되었다는 점에서 쿠데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먼저 법을 위반하여 통치권력을 강화해 놓고, 강화된 통치권력을 기초로 국민을 오로지 다스리기 위한 법을 양산(量産)하고는 이제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신정변 때, 이른바 비상각의(非常閣議)에서 무더기로 법을 개악(改惡)한 것 등은 그 좋은 예이다. 이러한 과정을 순수한 법이론의 측면에서 보면, 비상각의 같은 데서 만든 법은 원천적으로 무효임이 분명할 것이다. 어쨌든 법을 먼저 결정적으로 위반하고 파괴한 집권자가 '법을 지키라'고 국민에게 말할 때, 그 법이 두려워 지킬 뿐이지, 양심으로부터 법이 정의라 하여 지키는 사람은 없게 마련이다. 이때의 법은 이미 법이 아니라 하나의 폭력인 것이다. 유신기간 동안 남발(濫發)된 긴급조치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또 법의 제정과정에 있어서의 변칙, 날치기는 그 법이 정당한 법이 아님을 반영한다.

    셋째,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고 떠드는 정권은 그 자신 스스로 법을 지키고 있지 않기가 십상이다. 집권자가 법을 지키라고 강조하는 사회에 있어서 실제로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국민이 아니라 집권자 자신인 것이다. 그들은 이미 법을 파괴하고 유린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인식이 안 지켜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 있어서는, 법을 지키고(물론 지키고 싶어서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법에 굴레가 씌워진 절대다수 국민과, 그 법을 통하여 국민을 통치의 수단으로 생각하면서 실제로 자신들은 법 위에 초연하게 서 있거나, 군림하는 소수 특권계층으로 나뉘어지게 마련이다. 우리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집권층은 법에도 없이 정보, 공작정치를 감행함으로써 법관의 영장 없는 체포, 연행, 구금, 법적 근거도 없는 도청(盜聽), 미행, 연금을 하는가 하면, 그들 자신이 저지른 범죄는 언제나 치외법권적(治外法權的)이었던 것이다. 법이라는 이름의 힘의 지배가 있었던 것이며, 법보다는 힘의 우위(優位)를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힘이 권력의 본질이라면 법은 권력의 논리를 관철하는 수단이거나 외연(外延)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