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런 판례가 독일에 있다고 한다. 나치 히틀러 치하에서 레지스탕스운동을 지하에서 전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치밀하게 나치경찰과 군의 눈초리를 피해 다니면서 저항운동을 했고, 이 사실이 그의 부인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자신이 처벌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는 모르나 그 아내는 그의 남편을 고발하였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남편은 나치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보내졌고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는 동안 나치 독일의 패망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는 석방되었다. 그런데 석방된 남편은 그의 아내를 나치 체제에 부역한 사람으로 고발하였다. 민주화된 독일에서 아내는 법정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변호인들은 반나치운동에 대한 고발을 의무화하고 있는 나치의 법률체계에 따랐을 뿐이므로, 죄가 있다면 이 여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치체제에 있다고 하여 그 여인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이 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독일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판결은 이렇게 났다고 한다. 법이 인간의 양심과 정의에 기초하지 않는 한, 그 법은 폭력이며, 따라서 그 법을 준수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 법을 거부할 권리가 이 국민에게 있다. 그런데 피고인의 경우 준수하지 않아야 할 법을 준수하였다. 물론 그 책임이 나치즘 체제에 있지만, 이 여인에게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리하여 그 여인은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양심법의 문제가 생긴 연원은 인류의 역사와 거의 때를 같이한 듯 싶다. 희랍의 비극시인(悲劇詩人) 히포크레스의 안티고네라는 희곡(戱曲)도 양심법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집권자의 반대파였던 오빠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는 이유로 안티고네는 법정에 선다. 집권자는 그들 시체는 까마귀의 밥이 되도록 방치해둘 것을 명령했던 것이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말한다. 양심의 명령에 따라,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道理)를 한 자신은 무죄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양심과 정의라는 기준 위에서 볼 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이리저리 얽매고 있는 그렇게 많은 법들, '무엇무엇 해서는 안된다' '하지 마라'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법들은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