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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무관심에 대하여 - 7


정치적 무관심에 대하여 - 7


    기본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은 무관심 자체가 아니라 무관심을 위장(僞裝)한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져올 위해(危害)를 두려워한 나머지, 관심을 안으로 삼켜 보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 있어서의 정치적 무관심의 정체(正體)이다. '정치얘기를 하지 말자'는 얘기는 정치에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얘기요, 잘난 아들로 하여금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설득하는 어버이의 마음 속에도 정치에 대한 진한 관심과, 이해가 있기에 비로소 그 말이 가능한 것이다. 위장된 무관심 속에 비수처럼 날카로운 관심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선량한 이웃 속에서 놀라울만큼 정확한 정치적 판단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랄 때가 많다.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처세하는 사람과도 우연한 기회에 흉금을 터놓고 얘기해 보면, 그의 정치적 식견에 새삼 놀라게 된다.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 말하는 것을 삼갈 뿐이지, 정작 믿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서면, 정치와 농사의 관계를 꿰뚫어 설명하는 그 명쾌한 지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과 얘기를 해보라. 만약 그 사람을 대화에 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의 깊은 생각, 깊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치에 관해 물으면 '내가 뭘 아나요?'하고 애써 모르는 척하고,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확한 정치적 판단력과 식견은 놀랄 만큼 절실한 것이다. 그들은 무관심을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워낙 세상이 어수선하니 모르는 척할 뿐인 것이다.

    결국 민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아주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은 실상 그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자신이 속고 있는 것임을 정치권력은 모르는 것이다. 이른바 유신독재체제의 말기에 야당이 국회의원 총선 득표율면에서 승리한 것은 숨겨져 있는 국민의 정치적 관심이 얼마만큼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내가 야당총재 경선에서 모든 불리한 조건 위에서 승리했을 때, 나는 이것을 국민의 승리로서 선언한 바 있는데, 국민의 이러한 정치적 판단과 관심의 승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당원이 선거를 했으나 그 당원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바로 국민 자신이었던 것이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말은 하나의 진리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그 말만큼 깊은 정치철학이 달리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내가 서도를 할 때, 즐겨 쓰는 장자(莊子)의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若人作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

    사람이 착함을 위장하여 이름을 얻은 자는
    사람이 비록 해하지 아니해도 하늘이 마침내 처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