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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무관심에 대하여 - 8


정치적 무관심에 대하여 - 8


    뼈아픈 반성이 되겠는데, 혹시 야당이 서있는 모습과 관련하여 국민의 정치적 관심과 무관심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정치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습성이 언제부터인가 국민, 특히 지식인 사이에 깔려 있었다. 대체로 권력자의 손발 노릇이나 하고 거기에 붙어서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권력의 측면에 있는 정치인을 그렇게 보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야당하는 인사가 거리에라도 나갈라치면 격려의 눈길로 시민들로부터 많이 받았다. 그러니 정치인에 대한 경멸과 불신은 집권당에 붙은 일부 인사들에게 한정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야당 정치인까지를 포함하여 사회로부터 불신을 당하는 현상과 직면하였다. 한 때 우리나라의 정당제를 양당체제(兩黨體制)가 아니라 1.5 정당체제라는 말이 나돈 적이 있었는데, 대체로 사실상의 임명제 국회의원이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 이른바 유신체제 이후의 일이었다. 의석수의 분포가 모든 것을 반영하듯이 야당은 여당 의석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야당 혼자서 두배가 넘는 여당과 그것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정치권력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힘에 부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의회제도는 이때로부터 현저하게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석수의 많고 적음만 가지고, 야당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생겨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야당 자신이 의회제도의 회복을 포함한 전반적인 민주회복투쟁을 전개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야당과 야당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타파되어야 할 독재체제인 유신체제에 들러리로서 안주하려 한 야당사(野黨史)의 커다란 오점을 기록하는 현장에서 야당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유신체제는 처음부터 야당을 절름발이로 만드는 체제였다. 거기다 정치권력의 공작, 정보정치까지 집중적으로 야당에 투입되었다. 야당은 한쪽 다리로 불안하게 서있는 형편이었다. 야당이 나머지 한쪽 다리를 의족(義足)이나마 받쳐든 채 서있기를 국민은 바랬는데, 야당이 오히려 나머지 한 다리를 정치권력에 기대어 지탱하고자 했던 데서 야당과 야당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야당이 제 얼굴을 다시 찾으려 하지 않았던 점에서 야당의 국민으로부터의 불신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독재 권력이 노리고 있는 전부였고, 또 함정이었던 것이다. 야당이 이러한 모습을 보였을 때, 국민의 좌절은 컸고, 정치란 것에 대한 무관심이 확대되었다.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관심한 척하는 것과는 다른 불신에 기초, 주어진 무관심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종교인, 지식인, 학생, 언론인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투쟁이 정치권 밖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야당이 정치에 있어서 제3자적인 위치로 떠밀려 표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야당의 참 얼굴과 그 운명을 되찾으려 했다. 그 운명이 더 고달프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찾아야 할 성질의 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되찾는 작업은 고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국민과 이름없는 당원의 열성적인 지원과 성원으로 당을 이끌어갈 책임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야당이 여당과 정부의 들러리일 때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은 더욱 깊어지고, 정치와 정치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며 야당이 선명한 제 얼굴을 찾을 때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은 야당에 대한 성원과 지지로 바뀐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경험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