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신분계급을 뛰어넘어 주제넘게 정치문제에 대하여 말하였다가는 양반을 비롯하여 관(官)에 끌려가 치도곤이나 맞을 뿐인 것이다. 같은 양반이라도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벼슬길에 올라 있는 사람이 아니면,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역모(逆謀)로 몰리거나, 이미 벼슬길에 올라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으로 몰려 생명조차 지탱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속에서 안 듣고, 안보고,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져 왔던 것이다. 모난 돌이 정(釘) 맞는다는 말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속담임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제(日帝) 36년의 식민통치기간을 경과하면서도 계속하여 왔다. 일제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던 노래의 가사(歌詞) 가운데 '말깨나 하는 놈 감옥소 간다'는 것이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애써 정치적인 일에 무관심하고자 하는 이 나라 민중의 처절한 정치로부터의 도피의식이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정치로부터 의도적으로 도피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정치권력의 지나친 보복과 박해의 결과였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우리 역사에 정치권력에 거슬러 싸운 민중운동의 역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부분이 좌절로 끝났고, 그것이 좌절된 다음에는 처절한 보복을 당하여 왔던 것이다. 민중이 자신의 저항과 투쟁을 자기 힘으로 성공시킬 수 없었던 점은 우리 민중의 정치의식의 형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되고 있다. 민중이 받은 상처는 한(限)이라는 정지된 관념으로 가슴에 쌓이고, 처절한 탄압과 보복에의 기억이 남아 정치적 관심의 표명을 금기(禁忌)로 하게 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정치적 관심의 표명이 개인에게 미치는 위해(危害)가 엄청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조시대 이래 일제와 자유당시절, 그리고 공화당 정권을 거치면서 그에 거슬러 저항함으로 해서 개인이 받은 보복과 박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이 잘난 자식, 그리하여 감옥에나 끌려가는 그런 자식이기보다는 등따습고 배부르게 사는 평범한 자식이기를 일단 원하기 마련이다. 이런 인식이 누대(累代)에 걸쳐 이어져 왔던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자손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체내에 정치적 무관심을 하나의 생존철학(生存哲學)으로 못박아놓은 것이다. 우리 부모들이 흔히 하는 말에 "그 애는 너무 잘나서 부모 속 썩인다"는 것이 있다. 어느 부모가 있어 자식이 잘난 자식이기를 원치 않으랴만 그 잘난 자식이 겪어야 될 불행(그것은 필경 그 가족에게도 누(累)가 미치기 마련이지만)을 염려한 나머지 평범한 인생살이의 길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어버이 심정이 그리 평안치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