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목소리의 안보 외침 속에서 진실로 안보는 좀먹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어떠한 노력을 해서라도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니 국민은 안심하라는 태도와 그 태도를 실증적으로 구체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어늘, 거꾸로 국민더러는 안보가 위태로우니 잘못된 국정(國政)조차도 비판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자신들은 퇴폐와 향락을 즐겼던 것이니 이 가운데서 어찌 참다운 안보가 이룩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는 누구를 위한 안보인지에 대해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10여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신조 등의 서울침입 때의 사태를 아직껏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검정까지 침투한 훈련된 북한의 특공대들은 다행히 격퇴되었다. 물론 세검정까지 올 수 있었던 사실 자체로 이 나라 안보의 허점을 노정시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당시나 지금이나 더욱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보다 김신조 일당의 격퇴 후 서울시민들의 반응이다. 세검정 일대는 물론 오늘날 통일로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다투어 집을 내놓고 이사가려 했던 사실과 그리고 많은 서울시민들이 미숫가루 등 비상식량을 준비하는 등의 법석을 떨었다. 세검정 일대의 집 값이 폭락하였는데, 서울에서 이 지역이 아직까지도 상대적으로 집 값이 싼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이러한 현상에서 우리가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공산집단의 침략이 있을 때, 앞장서 싸우기보다는 피난부터 하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안보에 허점이 없고, 철통같은 방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적어도 사실대로는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극히 중대한 문제이며, 안보에 관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의 안보태세를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는 얘기인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들이 이러한 의식을 갖게 된 것은 첫째로 정부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자유와 민주라는 기본가치와 이념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그것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개인이나마 안전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보는 생명과 재산의 보호라는 개인주의적이고 본능적인 측면과,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와, 그 체제와 사회가 향유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호하려는 측면의 두 가지가 모두 균형있게 추구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념과 가치의 추구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때, 개인의 안전만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의 안보는 내재적으로 중대한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욱 위험스럽게 생각되는 일은, 현실이 개인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되지 못함으로 하여 개인만의 본능적인 안보의식마저 체념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마찬가지라고 국민이 생각하고 체념해 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일인 것이다. 지금도 나 개인의 안전이 극도로 위협받고 있는데, 더 나빠져봐야 별 것이 있겠느냐고 체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안보는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모든 위험을 극복하는 것은, 우리의 체제가 북의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국민으로 하여금 확신케 하는 일이다. 우리의 체제, 우리가 추구하는 이념인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의 모든 것을 던져 수호할 가치가 있다고 국민이 확신하는 일이다. 그것 없이 삶은 절망이고 죽음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나의 재산을 바칠 각오를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건설하고 이룩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화요, 자유와 민주주의체제의 우월성을 국민이 생활에서부터 느끼도록 하는 일이다. 이 이상 더 큰 안보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이것 없는 안보도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