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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안보 - 4


민주주의와 안보 - 4


    오늘날의 전쟁은 어떠한 형태로든 세계 여론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어떠한 국지전쟁도 그 자체로서 인식되고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여론의 심판을 받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면 이러한 여론전쟁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세계여론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면 우리는 천군만마보다 더 큰 안보상의 보장을 받는 것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내치(內治)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대의에 입각하여 이루어짐으로써 세계여론으로 인식되게 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이 자유 세계의 일원이며, 한 사람의 자유민도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결코 넘겨줄 수 없다는 확신을 세계의 인류에게 주는 것이야말로 안보의 요체(要諦)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세계가 좁아진 마당에 있어, 세계의 여론은 사실과 정의에 의하여 형성되므로, 거짓으로는 결코 오래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

    미국내 여론이, 그리고 세계의 여론이 한국은 방위되어야 할 가치가 없는 지역으로 평가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그 자체로서 지극히 위험한 상태에 직면하여 있음을 깨닫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의 여론공세를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여론공세가 결코 먹혀들어갈 수 없도록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에 입각한 조국의 참모습을 실제로 건설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인권이 이미 존재하지 않고, 대다수 국민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자유세계 국민들에게 무엇을 위하여 협력과 지원을 해달라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는가. 혹자는 미국의 여론, 일본의 여론, 그리고 세계의 여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일반적인 주장에 대하여 못마땅한 시선을 퍼붓는다. 자주안보의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자주 자립적인 안보가 중요하고, 또 그것이 최선의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독자적으로, 그 자체의 힘만으로 자국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나라는 이 세계에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자체 안보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미국조차도 자신의 힘만으로 국익을 지키고 안보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의 안보와 직결된 월남에서 미국은 패배하였다. 물론 미국의 영토가 침략당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또한 소련과 그 위성국들로 구성된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국들이 동시에 미국을 침공한다면, 미국이 독자적으로 그것을 방어할 수 있다고 쉽게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성(理性)에 의해 자제되고 있고, 그렇게 되면 세계와 인류의 멸망을 자초한다는 핵전쟁을 우리의 예상에서 제외시킨다면, 세계의 그 어느 나라도 독자적인 안보체제만으로는 완벽한 안보태세를 갖출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 볼 때 1대 1의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미국과 소련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으로 방어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는 국가는 없는 것이다. 집단안보는 그런 의미에서 회피할 수 없는 세계사의 진행방향이며, 현실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반도에 있어서의 전쟁 억제력으로는 거의 절대적이다. 한편 미국의 입장으로 보면 우랄산맥 서쪽으로 소련의 군사력이 집중됨으로써 서구지역의 위험을 가중시키는 일을 막고 소련 군사력의 이동을 억제하는 효과를 노린 미국의 세계전쟁의 일환으로서의 주둔인 것이다. 한국의 입장으로 보면 전쟁억제력으로서 평화의 담보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양국에 다같이 도움과 이익이 되는 안보협력체제인 것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이러한 협력관계가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자주국방을 내세워 기존의 협력관계에 균열(龜裂)이 생기게 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간의 사정을 보면 그렇지가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한국의 자주국방력이 배양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한반도 평화의 담보가 될 수 없다. 주한미군의 존재 그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애호하는 한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는 명분과 배합될 때 한국의 안보는 보다 튼튼히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주한미군의 존재는, 한국에 있어서 한국과 미국 양국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이념인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계기로 주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그것만이 진정한 한미 양국의 협력관계인 것이며, 협력관계의 결과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개화(開花)시키는 것으로 되어야 하는 이유로 된다. 6.25전란 때 젊은 피를 흘린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 지원과 미군의 한국주둔의 정당성과 명분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의 인권과,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모습을 실체적으로 확인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