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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안보 - 6


민주주의와 안보 - 6


    안보를 빙자한 겁주기는 예전에도 있었던 듯싶다. 언젠가 우연치 않게 역사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청(淸)나라의 침공이 있은 뒤였던듯 싶은데 이조후엽(李朝後葉)의 시대를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그런데 예나 이제나 국민을 채찍질함에 있어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아느냐 적이 호시탐탐 이 나라를 노리고 있는데 무슨 불평과 불만이 그렇듯 많단 말이냐. 너를 국사범(國事犯)으로 다루어야 되겠다"는 상투적인 수법이 있었던 모양이다. 몰락해 가는 양반의 가렴주구(苛斂誅求)에 견디다 못해 소설의 주인공이 양반에 저항하여 스스로 개간한 땅의 경작권(소작권이 아니라)을 주장하다가 관아(官衙)에 잡혀 국문을 당하는 장면에 이런 것이 있다. 국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현감 앞에서 국문이 시작되는데, 때리는 사람이 현감의 명령을 받고 "지금이 어느 때인 줄 아느냐" 하고 묻자 주인공이 대답하기를 "어느 때이긴 어느 때냐, 점심때가 조금 지난 때가 아니냐" 고 동문서답하는데 나는 소설을 읽다가 배를 잡고 웃은 적이 있었다. 필경 청나라가 다시 침공할 준비를 갖추고 그 침략의 기회와 빌미를 노리고 있는 때라는 대답을 얻으려고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것을 외면한 채 점심때가 조금 지난 때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가 그렇게 반영된 것 같은데, 어쨌든 재미있는 삽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이 어느 때냐는 소리를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할 사람은 그 질문을 당하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권력이 국민에게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대개의 경우 권력층이 특권과 부정과 부패로 그 지도력을 상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런 위협만으로 지탱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때냐고 권력이 묻기에 앞서 그 스스로 먼저 그 질문에 정직하고도 성실한 답변을 할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안보가 통치의 수단화되고, 안보가 권력의 강화와 영구화의 명분이 되는 것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배격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지 못할 때 안보는 더욱 위태롭기 때문이다. 내가 유신체제를 반대하고 그 논리를 배격한 것은 다른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신성한 안보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사실상 안보를 위태롭게 한 범죄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데 있었다.

    더욱이 북의 김일성 집단은 남한의 상태를 허위선전하면서 자신의 독재권력을 강화하여 왔고, 그리하여 세계에서 유례없는 오랜 독재정치를 해왔던 것이다. 또한 남한의 독재권력은 북의 위협을 들어 독재권력의 강화와 영구화를 획책하며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유린하여 왔던 것이다. 북의 권력은 남의 권력을, 남의 권력은 북의 권력을 빙자, 이용하며 권력을 지탱하여 왔으니, 두 권력은 적대를 내세워 실상은 보완관계에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 죽어나는 것은 양쪽의 국민뿐이다.

    안보가 권력에 이용되면 국민은 억압을 당하는 것이다. 권력에 이용되지 않는 진정한 안보, 국민과 정부가 총체적으로 화합하여 이룩하는 안보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창의와 참여, 그리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실현밖에 다른 길이 없다. 민주주의는 안보의 지름길이다. 안보를 위하여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이 유보될 수 있다는 논리는, 기만이요 허구이다.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확인과 노력없이 진정한 안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