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월남전과 월남의 패망은 다른 각도에서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월남정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즉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그것을 파괴하고 유린함으로 해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론분열의 책임이 국민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월남정부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 위에 권력 자체가 부패하여, 월남에게 준 미국의 화기(火器)가 바로 베트콩에게 넘겨지는 사례까지 나타날 정도로 부패하였던 것이다. 지켜야 될 가치가 있는 체제도 아닌 마당에 무엇을 지켜야 한단 말이냐고 하는 회의(懷疑)가 국민 속에 팽배할 만큼 월남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이반(離反)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안보는 안보의 목적이 되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우는 일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월남의 패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안전을 보장하고 유지시키지 못하는 정치권력이 부르짖는 안보주장은 실제로 설득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또한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안보를 위한 사기(士氣)의 진행방향은 후방으로부터 일선으로 향하는 것이다. 결코 일선의 사기가 후방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밑받침이 없는 군인만의 사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월맹과 베트콩이 총공세를 취했을 때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막대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월남이 어처구니없이 패배한 것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화력만을 놓고 볼 때 월남의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패망이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하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남도 그렇지만 크메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안보를 내세우며 군사독재를 강화했던 론놀과 티우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그 와중에서 대다수 국민들을 버리고 금은보화를 챙겨 외국으로 탈출하는 데 급급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입만 열면 안보를 외쳤으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의 안보와 가족의 안전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부르짖는 안보가 한갖 허구(虛構)요, 독재권력 강화를 위한 구차한 명분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증거인 것이다.
그들은 안보를 내세워 국민을 채찍질하였으나 그들과 국민이 탄 배가 난파하였을 때, 그들은 안보를 외치면서 한편으로 미리 준비해두었던 구명용 보트로 그들만이 탈출하였던 것이다. 소리높이 외쳐지는 안보의 실재와 그 도덕성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교훈으로 배웠던 것이다.
설혹 당국의 월남을 보는 견해가 일면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견해의 주입과 강요에 앞서 월남 정부지도자들의 과오를 상기하면서, 정부 당국자의 자기반성과 과오를 시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기보다는 월남의 패망을 정권안보를 위한 안보논리의 주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와 명분으로 삼았던 것은 엄청난 과오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