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안보는 무엇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 접어둔 채, 목적없는 안보의 강조만이 난무했던 것이다. 안보란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으나, 안보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안보는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데 있어 결정적인 수단으로 되었다. 그것이 한해 두해가 아니요 해방 후 지금까지 권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30여년 동안 쉴새없이 되풀이되어 방송되어 왔다.
안보를 내세울 때 뒤따라오는 얘기는 으레 남과 북 사이에 대치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북의 호전성 때문인데, 문제는 언제나 그 긴장이 위기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말들은 사실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안보문제에 관한 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은 정치권력이었기 때문에 그 구체적 실상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오직 북의 김일성과 남의 독재권력만이 그 위기의 실상을 알고 있을 뿐인 것이다. 어쨌든 그런 위기의식의 주입이 너무 자주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민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발표를 보고도 그것을 믿기보다는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끔 되었던 것이다. 마치 우화(寓話)에 나오는 목동이 늑대가 나왔다고 거짓으로 외치다 보니 정작 진짜 늑대가 나왔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외쳤으나 사람들이 또 거짓말이라고 판단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방불케 하는 사태라 할만한 것이다. 나는 이런 경우가 실제로 나타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우려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